고관부인들의 옷바람이 여당의 표를 몽땅 날려버려 6·3재선의 여야 승패를 갈랐다. 여권 핵심부가 옷사건의 뒷수습만 잘 했어도 선거결과는 여당의 참패가 아니라 여야 1승1패로 완전히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SBS와 여론조사기관 소프레스 글로벌리서치사가 선거기간 세 차례 실시한 여론조사는 이같은 분석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옷로비사건이 결정적으로 위력을 발휘한 곳은 선거초반부터 종반까지 여야 후보가 호각세를 이뤘던 인천 계양·강화갑. 이 곳에서 여권은 96년 15대 총선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었다. 서울 송파갑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가 초반부터 우위를 점해 상대적으로 「옷바람」을 덜 탔다. 옷로비사건은 시일이 지날수록 이후보의 우세를 굳혀줘 최종 표차를 크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언론이 옷로비사건을 첫 보도한 지난달 24일 국민회의의 자체조사에서 한나라당 안상수(安相洙)후보는 국민회의 송영길(宋永吉)후보를 불과 2%포인트 차이로 앞질렀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김태정법무장관 부인이 검찰 수사의 초점으로 등장한 27일에는 지지율 격차가 4.6% 포인트 차이로 벌어진다. 이후 안후보의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지면서 선거판은 혼전 양상으로 치달아 마침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귀국한 6월1일에는 두 후보의 차이가 1.3% 포인트 정도로 좁아진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김대통령의 김장관 유임 결정이 이뤄진 2일 표심(票心)은 결정적으로 여권을 버렸다. 개표결과 SBS의 1일 조사에서 38.3%에 달했던 무응답자중 적어도 25%정도가 야당을 선택한 반면 여당쪽으로 마음을 정한 후보는 그 절반인 13%정도에 불과, 승패를 결정지은 것으로 분석된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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