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조선초기부터 여론정치가 행해졌다. 최초의 여론조사는 지금부터 569년 전인 1430년 세종12년 실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새로운 토지세법인 공법(貢法)을 시행하기 위해 국민들의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전국규모로 실시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표본이 17만명이나 됐다고 하니 세종시대 인구를 600만명 정도로 추정할 때 국민 30명당 1명이 참여한 정밀한 여론조사였다고 볼 수 있다.■5개월여에 걸친 분석 결과 응답자의 57%가 공법시행에 찬성했다. 그러나 세종은 이 제도를 즉시 시행하지 않았다. 세종은 조정내의 중신과 하급관리들을 대상으로 다시 의견을 일일이 묻고 찬반이 엇갈리자 제도시행을 위한 여건을 마련한 뒤 결국 백성들의 뜻을 좇아 이 제도를 시행했다. 국사를 결정하는데 사려가 깊었던 세종은 지금까지 위대한 임금으로 불린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고가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도가 문제가 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지난 1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김태정법무부장관의 거취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 무조건 해임하라는 의견이 33%, 수사결과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65%라고 소개했다. 2일 검찰이 김장관부인은 혐의가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김대통령은 김장관의 유임을 결정했다. 이 조사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의 의뢰로 지난달 28일 여론조사기관 월드리서치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설문 내용은 옷로비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의 행태를 포함, 10개 문항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김장관의 유임이 결정됐으나 김장관해임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는 오차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번 조사가 애당초 어떤 의도를 갖고 설문내용을 만든 것이 아닌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의도가 드러난다면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진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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