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역사학 관련 10개 학회가 한 데 모여 지난달 28, 29일 서강대에서 제42회 전국역사학대회를 열었다. 공동 주제는 「20세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한국서양사학회가 주관하고 역사학회, 한국사학회, 한국고고학회, 동양사학회 등이 참여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공동 주제말고도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교육 경제사 과학사 고고학 미술사 등 분과별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발제
인간중심의 세계관 극복 필요
박이문(朴異汶·포항공대교수·철학) 천 년 후 역사가들은 20세기를 「기로에 선 인간중심적 문명의 세기」로 쓸 것이다. 20세기 문명은 다른 어떤 세기와 달리 「세계화」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화는 미국화며, 미국화는 서양화고, 서양화는 과학적 문명화다.
20세기는 인간중심적 문명과 생태중심적 문명의 기로의 세기다. 인간중심적 세계관의 틀에서 문명의 종말을 맞느냐, 생태중심적 세계관으로 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인가 결정하는 세기다. 인간은 역사의 주인인 동시에 책임자다. 인간이 종말을 극복하고 새 밀레니엄 문명을 계승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조급함이 동아시아 역사 왜곡 불러
민두기(閔斗基·서울대 명예교수·동양사학) 동아시아의 20세기 역사는 중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시대적 과제를 추구하면서 몹시 조급하여 역사의 시간과 숨가쁜 경쟁을 했다. 중국은 부강(富强)을 위해 눈 앞에 연거푸 다가오는 망국(亡國)의 위험을 제거해야 했다.
일본 역시 식민지화의 위험을 극복하고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참여하는데 시간이 부족했고 침략의 수단을 절제없이 사용했다. 이런 조급함이 역사 전개의 비정상을 불렀다. 또 정치와 권력의 힘이 강해 본래 자율적이어야 할 사회·문화적 발전에까지 크게 작용했다.
이어 조동걸(趙東杰) 국민대 명예교수가 「인간의 길을 향한 진통:20세기 한국사의 전개와 반성」, 차하순(車河淳) 서강대 명예교수가 「커다란 패러독스의 세기」를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
김경일(金炅一·정신문화연구원 교수·사회학) 60년대 이후 국가주도에 의한 위로부터의 산업화와 성과보다는 그것을 위해 치러야 했던 사회적 대가를 눈여겨봐야 한다.
독재권력이나 군사전제에 의한 개발은 「시한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이 세계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며 오늘의 경제파탄 역시 「개발독재에 의한 유보된 비극」이었다. 접근방법은 다르더라도 동아시아 다른 나라 역사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안병욱(安秉旭·가톨릭대교수·국사학) 변방의식 속에서 몰주체적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쌓여있는 100년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역사에서 한국을 이야기할 때 그 한국의 범주는 어디까지고, 주체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혈연이나 지리의 기준, 혹은 문화 전통에 따라 범주를 만들거나 평가하는 것으로는 역사의 내용을 올바르게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박지향(朴枝香·서울대교수·서양사학) 20세기는 인류에게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가져다 준 세기였다. 하지만 이 기간은 인류역사 전체를 볼 때 다른 세기에 비해 특별히 나쁜 세기는 아니었다.
20세기는 모든 면에서 인류가 게임의 법칙을 배워 온 세기였다. 새 천 년을 앞둔 역사가의 과제는 역사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급한 사람들에게 항상 일러주는 것이다. 동시에 희망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진우(李鎭雨·계명대교수·철학) 20세기가 문명사적 진보보다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훨씬 더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면, 과학기술문명이 인류의 진보에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것을 고집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20세기는 문명이 야만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동시에 「문명의 야만」을 발전시키고자 시도한 역설의 시대다.
/정리=김범수기자 bskim@hk.co.kr
서강대에서 28, 29일 열린 전국역사학대회는 20세기를 되돌아 보고 새 천년을 조명한 큰 학술대회였다.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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