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의 유임으로 가닥을 잡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시국 수습 작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라는 비판론이 여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우선 『상황을 조기에 정리할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그래도 김대통령이 귀국당일날 벌써 김장관 문제에 대해 일정한 선을 긋고 결론을 한 방향으로 유도한 것은 성급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아무리 국내 참모진으로부터 꾸준히 보고를 받았다지만 1주일 가까이 외국에 있다 온 입장에서 과연 국내 여론과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귀국후 하루 이틀만이라도 각계 인사와 만나 여론 흐름을 충분히 숙지한 뒤 해결책을 내놓았더라면 적어도 「봉합에 급급했다」는 비난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야당이 『집안식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민회의 총재대행으로부터 받은 보고를 여론 수렴으로 치부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꼬집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김장관 유임 결정이 나온 뒤 자민련은 물론 국민회의에서 조차도 회의적 견해가 나온 것은 청와대의 여론수렴이 얼마나 「형식적」인 것이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를 「마녀사냥」이라고 쉽게 규정하는 것은 자기보호 본능이 우선할 수밖에 없는 야당 총재시절에나 가능한 행태』라는 시각도 있다. 『통치권자가 국민이 지켜보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언론 보도를 마녀사냥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데서 정권의 오만함까지 느껴졌다』는 시중 여론도 있다.
김대통령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김장관의 퇴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근거로 한 여론조사기관의 자료를 든 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조사결과의 해석 등에 허점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참모들이 DJ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익은 자료를 보고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권안에는 또 『김대통령이 김장관 퇴진 여부 결정의 잣대로 법을 제시한 것을 여론과 민심이 수긍할 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옷 로비 의혹은 기본적으로 국민 정서, 감정의 문제인데 이를 법의 논리로 풀겠다는 발상은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민단체 등은 『김장관 거취 논란의 출발점은 옷 로비 의혹이 아니라 그의 입각 자체라는 점을 DJ가 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장관 임명은 헌법논리상 국민이 위임한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것인 만큼 여론과 민심이 쉽게 수긍하지 않는 인물에 대해선 대통령이 정치적 「후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과감하게 결정을 재고하는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다.
이밖에 김장관 파문의 와중에 부각된 여권내 파워게임, 정국 운용시스템의 난맥상 등에 대한 김대통령의 지적과 성찰이 나오지 않고 있는 점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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