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고, 대화를 안하면 남남처럼 모르고 지내는 사이가 부부예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든지 터놓고 이야기 하세요』95년 시어머니와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기록한 책 「고부일기」로 화제를 모았던 주부 김민희(50)씨. 결혼한 지 26년째에 접어든 그가 이번엔 남편 한윤수(51·도서출판 형제 대표)씨와 나란히 「부부일기」를 펴냈다. 책 제목은 「이 고구마야」(김민희)와 「이 감자야」(한윤수). 화가 나면 얼굴이 울퉁불퉁 붉어지는 남편을 「고구마」로, 얼굴 모양이 동그스름한 아내를 「감자」로 부르는 이들 부부가 서로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쓴 책들이다.
한씨 부부가 서로를 돌아보게 된 것은 IMF이후. 생활고 탓에 잦은 부부싸움과 갈등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부부는 상대방을 향해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게 됐다. 공기나 물, 햇빛처럼 늘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서로에게. 그리고 그 따스한 눈길로 사랑과 신뢰를 재확인하는 글을 책으로 엮어냈다.
생활비 문제로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아지자 아내는 오히려 하루에 하나씩 「남편이 고마운 이유」를 메모장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무서운 꿈 꿀 때 흔들어 깨워준다」 「높은 곳에 둔 물건 꺼내준다」 「지하철 빈 자리에 나를 앉힌다」 「새벽에 어머니 죽 끓일 때 어깨 다독거려 준다」 「나 아프면 이불개고 깔아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같이 좋아해 준다」…. 시시콜콜 적어놓은 것이 어느새 103가지. 자연스레 남편은 어느 때보다도 더 든든한 반려자로 다가왔다.
남편도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씨는 『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과연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한 시간정도 짬을 내어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위, 사물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놓는다면 아내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아내를 기쁘게 하는 방법으로 ▲꽃을 선물한다 ▲얘기를 들어준다 ▲비웃지 않는다 ▲재능을 알아준다 ▲맛있게 먹어준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여준다 ▲안아준다 ▲같이 노래부른다 등을 소개했다.
김씨 가족은 가정생활을 주제로 돌아가면서 책을 낸 이력이 있다. 86년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4회 여성생활수기 우수상 수상자이기도 한 김씨는 「고부일기」로, 시어머니 천정순(78)씨는 「붕어빵은 왜 사왔니?」(96년)로, 한씨는 「내 속 썩는 건 아무도 몰라」(97년)로 저마다 「가슴에 품은 말들」을 풀어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