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개각과 고관부인 옷 로비 의혹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여권내 신·구주류간의 갈등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귀국을 맞아 일단 진화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두 진영의 속내를 들춰보면 여전히 감정의 앙금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두 진영이 서로에게 품고 있는 불만은 무엇일까. 양측 핵심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 가상의 대화로 꾸며 본다.구주류 『여권이 지금 맞고 있는 위기상황의 직접적인 원인은 역시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는 신주류측에 있다고 본다. 개각만해도 모든 정보를 독점한 채 우리와 상의한 적도, 미리 귀띔을 해 준 적도 없지 않은가』
신주류 『정보를 독점할 게 뭐 있나. 이번 개각은 김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가 모든 일을 상의해 결정했다.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은 두 사람 사이의 연락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상황이 이런데 뭘 상의하고 말 게 있나』
구주류 『개각 이전에도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이 형성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대통령을 뵙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비서실 인사들이 당중진이나 동교동과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가운데서 대통령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게 그 쪽 아니었던가』
신주류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은 맹세코 없다. 대통령께서 필요하면 누구라도 불러서 말씀을 나누고 계신데 무슨 장막이 있다는 것인가. 대통령에 대한 접근 문제를 말하는 거라면 오히려 우리 쪽이 할 말이 많다. 솔직히 말해 상당수 동교동 인사들이 대통령 관저를 은밀히 오가지 않는가. 우리가 알기론 동교동 핵심 인사들은 개인적으로 대통령 수행비서 등을 통해 직접 대통령에게 여러 현안에 대한 보고서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권노갑(權魯甲)고문의 최근 청와대 방문도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이뤄졌다』
구주류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상 우리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신주류 『대통령은 이제 과거의 야당 총재가 아니다. 공적 채널이 엄연히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꾸 최고권력자와 직거래를 하려고 한다면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다』
구주류 『그래서 우리가 전화를 하면 답도 안 해주고 무시해 버렸는가. 개인적으로 무척 섭섭하다. 자존심 상해서 말을 안해서 그렇지』
신주류 『바빴거나 아랫사람들의 착오였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다』
구주류 『과연 그럴까. 최근에 모 시사주간지가 동교동 실세 인사를 다루면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그 사람은 이제 대통령이 버렸으며 개혁 대상이다」는 등의 악의적인 모함을 한 적이 있다. 뒤를 캐 보니 그 청와대 관계자는 신주류 핵심인사가 가장 아끼는 비서관이더라. 그 쪽 핵심인사의 방조나 후원이 없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참느라 정말 힘들었다』
신주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갖고 얘기하지 말자. 설사 그런 얘기를 했다 해도 그 쪽에서 지목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끼는 동교동 소장파가 아닌가』
구주류 『출발은 동교동이었지만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신주류 핵심의 최측근이다. 어떻게 아랫사람을 단속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나. 그 기사가 나온 시점도 그렇다. 앞으로 잘 지내 보자고 당사자들끼리 골프까지 함께 한 직후에 그런 기사가 나오도록 한 것은 너무나 이중적인 행태 아닌가』
신주류 『그건 정말 오해다. 오히려 음해를 말하자면 그 쪽이 만만치 않다. 굴러온 돌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들고 있다느니, 정권을 누가 만들었는데 청와대를 온통 장악하려 드느냐니, 우리를 몰아세우지 않았는가』
구주류 『청와대를 지배하려고 욕심을 부린 건 맞는 얘기 아닌가. 정권 출범때 과거 고생한 사람들을 좀 좋은 보직에 임명해 달라고 그렇게 아쉬운 소리를 했는데 된 게 뭐가 있는가』
신주류 『안 된 건 또 뭐가 그렇게 많은가. 어떻게 청와대 비서실을 과거 인연에 의해서만 조직할 수가 있나. 직책을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해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외곽을 돌면서 김실장 등을 향해 뒤에서 험한 소리를 해대는 것도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대부분 그쪽에서 추천한 사람들이 그러고 다닌다더라. 그건 분명한 이간질이다』
구주류 『누가 무슨 얘기를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우리 윗분들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피차 그런 오해는 하지 말자.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앞으로 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주류 『동감이다. 서로 대통령을 잘 모시자는 뜻은 같은 것 아닌가』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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