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연구소(KRIBB) 유전자은행사업실(실장 박용하)은 최근 미생물 2종을 분류, 세계학계에 전혀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속(屬)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소 이름을 딴 크리벨라(Kribbella)속이 그 것. 세계미생물분류위원회의 「계통세균학 국제저널」 최신호에 이 사실이 발표되자 미국 일본 유럽의 유전자은행의 주문이 쇄도했다. 박용하실장은 『첨단 유전자분석기술과 컴퓨터공학이 결합된 생물분류기술이 우리나라도 일정 수준에 올랐다는 뜻』이라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명공학의 자원을 발굴하는 기반이 바로 생물분류기술이다. 이제 「생물유전자원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선진국의 유전자 사냥
「생물유전자원 전쟁」. 생명공학자들은 「무역전쟁」처럼 머잖아 생물자원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선진 제약회사, 유전자공학팀들이 개발도상국가에 몰려가 전래치료법에 이용되는 식물, 암·당뇨등에 면역을 가진 특이 부족의 신체조직, 장수마을 주민들의 혈액등을 채취하는 「유전자 사냥」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178개국이 가입한 생물다양성협약은 특정 국가의 생물자원의 유전정보를 이용, 항생제 효소등을 추출·상용화할 경우 연구개발자와 애초의 자원 보유국이 동등한 지분을 소유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예컨대 A라는 선진국의 제약회사가 B국의 흙에서 미생물을 떠와 항생제를 개발, 1억원의 이득을 챙겼을때 A국은 5,000만원의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 고무뿐 아니라 이제는 미생물등의 유전정보가 더욱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뜻이다.
선진-개도국의 첨예한 이해대립
물론 각국 상황에 따라 입장과 법제가 다르다. 특허권과 지적재산권 보호에 앞장섰던 선진국들은 생물자원보호에는 일률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 미국은 생물다양성협약에 가입조차 안 하고 있다. 반면 브라질같은 자원보유국은 외국의 연구자가 자국 자원이 포함된 물질(흙, 물, 쓰레기등)에 접근할 때부터 등록·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여기서 분리한 미생물을 등록토록 하는 것은 물론, 보관 이동에 대한 책임도 연구자에 지운다.
선진국-개도국의 이해대립이 첨예한 것은 생물자원의 경우 생태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미개발지나 극한생태에 유용생물자원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DNA증폭에 사용되는 탁 폴리머레이즈라는 효소는 태평양 해저 화산에서 발견된 테르머스 아쿠아티큠이란 고온성 미생물에서 추출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생물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연구비 예산도 적고 토착미생물 발굴은 막 시작단계다. 국내 최대규모인 생명연 유전자은행은 미국 일본에 비하면 예산과 자원규모가 10분의 1 수준이다. 미생물 뿐 아니라 동·식물등 국내 생물종의 표본수집도 외국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미 자연사박물관의 경우 전시장 지하에 축구장 몇배가 되는 공간에 생물을 건조보관, 언제든지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구상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물, 특히 미생물종이 많다. 어류는 1만9,000종, 즉 90%정도가 알려진 데 비해 세균은 밝혀진 종의 10~1,000배가 자연계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표2 참조). 박실장은 『유전자조작등 생명공학기술이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이라면 분류기술은 쾌속선을 몰고 풍부한 어장을 찾는 기술』이라고 비유했다. 자원전쟁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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