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옷 로비의혹」 제기는 여권내 신·구주류간의 파워게임 산물일까. 개각 파문과 동시에 터진 고가옷 로비의혹 사건의 확대과정과 관련해 여권내 권력 갈등설이 그럴싸하게 번지고 있다. 신주류의 정점은 김중권(金重權)청와대 비서실장이고 구주류는 동교동계가 주축. 양측을 이간질하는 출처불명의 각종 의혹, 설들이 난무하고 두 진영을 오가며 감정을 부채질하는 이들까지 있다. 김실장과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 한화갑(韓和甲)총재특보단장 등 양측 핵심 인사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지난 주말과 주초 접촉을 통해 상당 부분 오해를 해소함으로써 상황은 일면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양측의 충돌은 언제든지 재연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개각은 신주류의 구주류 제거용? 이번 갈등의 시발점은 5·24개각. 핵심은 청와대내 유일한 동교동 통로였던 박지원(朴智元)전공보수석의 입각과 정치적 논란을 야기한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 발탁이었다.
개각직후 구주류 주변에선 『신주류의 대표격인 김중권실장이 청와대를 장악하기 위해 그나마 청와대안의 유일한 구주류였던 박전수석을 밀어냈다』는 얘기가 순식간에 번졌다. 『김실장이 내각에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김장관의 여러 문제점을 감춘 채 인사자료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김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았다』는 비판론도 뒤따랐다. 몇몇 구주류 인사들은 이참에 『김실장 등 신주류측이 대통령주변에 인의 장막을 펴고 있다』『평소 전화를 해도 회답도 잘 안해주더라』는 등 묵은 감정들까지 쏟아냈다.
그러나 개각과정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여권 핵심인사의 증언과 주변 정황 등을 종합해 보면 실상은 다른 듯하다. 우선 박전수석은 본인이 희망해 청와대를 나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박전수석은 개각 윤곽이 잡히기 전에 이미 김실장에게 청와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김실장이 이를 김대통령에게 전하기도 전에 먼저 김대통령이 김실장에게 박전수석의 입각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박전수석이 신·구주류 갈등설을 불식하기 위해 이같은 저간의 사정을 직접 동교동측에 해명했을 것』이라는 게 이 고위관계자의 전언.
김장관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번 개각은 전적으로 대통령 혼자서 했다고 봐도 된다』는 의견이 청와대내에서 지배적이다. 청와대측은 김실장 등의 인사자료 작성 부실 책임에 대해 『법무비서관이 작성한 인사자료 3권이 대통령에게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인 인선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며 『보좌진은 그 나름의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한 동교동계 핵심인사는 31일 『박전수석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청와대를 나왔고 김장관은 「어른」이 직접 고른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이제 더 이상 이 사안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옷로비의혹 돌출도 신·구주류 갈등의 산물? 여권 주변에선 『고관부인 옷 로비의혹도 개각을 주도한 신주류를 견제하기 위해 구주류측에서 일부러 퍼뜨린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돈다. 로비의혹이 개각 직후에 본격 확산된데다, 핵심당사자가 신·구주류간 갈등의 핵으로 작용한 김태정장관이라는 게 근거.
그러나 여권 내부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그야말로 소설같은 얘기』라고 일축한다. 신주류에 배타적인 동교동계 의원들까지도 『신·구주류 모두 정치적으로 같이 죽자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있을 수 없는 발상』이라고 펄쩍 뛰었다.
정황상으로도 「음모론」은 설득력이 적어 보인다. 의혹이 개각 한참전에 이미 주간지와 일간지 지면을 통해 크고 작게 언급됐고 첫 언론 보도도 개각당일 아침에 나왔으며 출처도 비정치권인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신주류도 핵분열했다는데… 개각과 관련해 구주류측에서 제기했던 또 다른 논란거리는 『김실장이 자신과 함께 신주류의 양대축이었던 이종찬(李鍾贊)전국정원장마저 정치인 배제 원칙을 핑계삼아 물러나게했다』는 주장. 청와대내의 범(汎)동교동계 인사들도 『이전원장이 유임을 바라고 있음을 알면서도 김실장이 정치인 배제 원칙을 내세워 이전원장의 교체를 강력히 건의, 관철시켰다』는 얘기를 흘렸다. 심지어 『김실장이 국정원장 인사 부분을 숨기고 있다가 개각 이틀전인 22일에야 이전원장에게 알려줌으로써 이전원장이 손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밝힌 속사정은 영 딴판이다. 『이전원장 교체는 김대통령이 김종필(金鍾泌)총리와 상의해 결심한 것으로 김실장조차도 김대통령으로부터 방침을 설명듣고 놀랄 정도로 예상밖의 결정이었다』는 것. 김실장도 최근 사석에서 『이전원장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어낸 악의적 모함』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문제는 남아 있다. 쟁점들에 대한 신·구주류 양측의 이해의 폭은 좁혀졌지만 그래도 찜찜한 구석은 남아 있다. 우선 구주류측은 『정치인배제 원칙에 왜 김중권실장 본인은 해당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여전히 접지 않고 있다. 김실장측은 『내년 총선에 나갈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구주류측은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신주류측도 『대통령을 올바로 보좌하는데 「출신성분」을 따지는 태도는 옳지 않으며 참모가 밉다고 대통령의 전권인 인사문제까지 비판하는 것은 대통령 자신을 욕보이는 처사』라고 불만이다. 구주류측은 『대통령이 듣기 싫은 소리도 때론 해야 하는게 측근 참모의 도리』라고 맞받으면서 『여차하면 직소(直訴)도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긴장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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