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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사모님들 우산 받으세요

입력
1999.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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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높은 분들의 사모님들은 그렇게들 사는구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며 즐기고, 「봉사활동」을 무슨 노리개처럼 차고 다니며 행세하고, 옷은 제 돈 내지 않고 사 입고, 어려운 일은 남편이나 서클의 회원들 힘으로 해결하고….그런 식으로 쉽고 편하게 세상을 살고 있구나. 정·관계 인사의 부인들과 재계인사의 부인들로 구성된 단체는 입회비가 500만원이나 된다지.

그 단체에 가입을 하려면 회원 3명의 추천과 전체회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지. 그런 사모님들이 몇 명씩 모여 밥 먹고 쇼핑하고 다니면 돈은 누가 낼까. 재계인사의 부인이 내겠지 뭐. 그럼 그 돈이 결국 알게 모르게 로비자금이 되고 비 올 때 우산노릇을 해주게 되지 않겠어.

고가옷 로비의혹사건에 대한 일반시민들, 특히 일반여성들의 시각은 이런 식이다. 상류층 사모님들에 대한 인식은 이 사건으로 인해 더욱 나빠졌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어떤 내용이 되더라도 상류층에 대한 반감과 불신은 쉽게 해소될 것같지 않다.

비록 단편적인 것들이지만 사건을 통해 알려진 사모님들의 생활을 자신의 처지와 비교해 보며 울분을 터뜨리거나 상실감,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상류층 사모님들은 어느 시대에나 선망과 모방의 대상이지만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선망과 대접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 학식이나 덕망, 재력 덕분이 아니라 남편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사모님들 사회에서도 남편들의 지위와 똑같은 서열이 매겨지며 서로 범접해서는 안되는 상하관계와 위계질서가 작동한다. 남편이 상관이면 사모님도 상관이다.

그런데 사모님들끼리는 상하관계의 준수와 이행에 철저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위 이상의 대접을 받으려 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모님들의 문제다. 「남편이 대령이면 사모님은 장군」, 「남편이 차관이면 사모님은 장관」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상류층인사들은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성공은 합심일체가 된 부부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남편의 승진과 자녀교육, 부의 축적과 확충을 위한 경제활동에서 적극적이고 맹렬한 내조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획득한 사람들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법이다.

그러나 일정한 지위에 올라 일거수 일투족이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공인의 신분이 된 다음부터는 어떻게 행동하고 생활해야 하는가 하는 역할모델을 정립하지 못한 사모님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생활반경과 영향력의 범위가 커진 것을 즐기면서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살아갈 뿐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일에도 아주 서투르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사모님들을 유혹하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사모님들이 바른 처신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최순영 대한생명회장은 2월초 구속됐다. 그런데 사모님들은 이미 지난 해 12월부터 구속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우산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정확히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미리 마음의 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는 해명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실 여부가 제대로 규명돼야 하겠으나 남편이 다루는 공무상의 비밀을 어떤 경로인지 사모님이 알게 됐고, 그것이 사모님들 사이에 일거리, 말거리가 된 것부터가 문제다.

활빈단이라는 시민단체가 고위공직자들의 부인들이 정도(正道)를 걷도록 촉구한다는 취지로 총리에게 통치마(몸뻬) 18점을 보내 나눠주라고 했다.

몸뻬 바지 입고 구슬땀을 흘리며 소리없이 불우시설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사모님들에게는 우산도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

그 우산은 남들에게 부끄러운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반성하면서 공과 사를 구분하고 진정으로 모범적인 사회의 지도층이 돼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상징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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