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백제병원 양창순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별로 학교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보다 더욱 엄격해진 규율도 그러했고 어떤 과목은 재미있었지만 어떤 과목은 도대체 이런 것이 우리에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은 생각 뿐이었다. 한 번 가보지도 못하고 사진으로조차 보지 못한 지명과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온갖 광물질 이름을 달달 외우면서 나는 점점 학교에 흥미를 잃어갔다. 부모님이 원하시니, 사회에서 학교를 다니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니 그저 다닐 뿐이었다. 유일한 즐거움이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정도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한 여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매일처럼 『지겨워!』를 외치고 있는 우리에게 그 선생님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선 옷차림이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당시 사회의 유행이긴 했지만 감히 미션스쿨에서 허용이 될까 싶게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이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 분의 첫 시간, 첫 질문이 『너희는 무엇 때문에 학교를 다니느냐?』였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부모님이 다니라고 하니까 다니지요』하고 대답했다. 『뭐라고? 아니, 그렇게 성취 동기가 없어서 어떻게 하나?』 선생님은 믿을 수 없다는듯 거의 분노에 가까운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셨다. 순간 그 말에 우리 모두는 멍한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내게는 굉장한 일격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성취 동기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학교를 다니고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이 과정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목표가 뚜렷하다면 그 과정이 때로 따분하고 얼핏 무의미하게 생각될지라도 「목표를 향한 과정」이라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의 그 말씀 한 마디 덕분에 나는 그 지겨운(?) 6년간의 중고교 시절을 무사히 견뎌낼 힘을 얻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사는 것이 안개 속 같은 때 나는 그 선생님의 당당함을 기억해내며 나의 「성취 동기」를 되새겨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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