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나라」. 북녘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 말을 토해냈을까. 87년 2월 일가족 10명과 함께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59)씨.남한에서 12년째 새 삶을 일구고 있지만 남녘사회는 그의 바람처럼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 청진의대 대학병원 내과의사 겸 교수로 있던 김씨는 귀순후 의학연구소에 잠시 몸담은 뒤 「사람이 살만한 따뜻한 곳」을 찾아 쪽빛파도가 넘실대는 경남 남해군 미조면 송정리 2만여평에 「평화의 마을」이라는 기도원을 세워 정착했다. 불우노인들을 위한 양로원과 요양원을 지어 봉사활동을 펴겠다는 소박한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복지시설 설립자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간 김씨는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사기를 당해 십수억원을 날리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는 『두세번 사기를 당하면서 좋은 사람도 있는 반면 나쁜 사람도 있다는 것과 자본주의의 쓴맛을 맛보면서 배신감도 느꼈다』며 『마음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자본주의를 배우는 수업료로 생각하며 분한 마음을 다스렸다』고 말했다.
빚더미에 오른 김씨는 97년 결국 기도원을 폐쇄하고 서울로 올라와 간증집회로 소망을 다시 가꾸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경기 광주군으로 거처를 옮겼다. 빈털터리 신세지만 노인복지시설 설립 꿈을 다시 펼치기 위해서다. 김씨는 기도원을 팔아 서울 인근에 조그마한 노인복지시설을 지어 어려운 노인들에게 인술을 펼 계획을 갖고 있다. 남한에서 개신교에 귀의, 집사로 신앙생활에 전념해온 그는 그동안 간증집회를 다닌 교회가 1,500개가 넘을만큼 유명세를 얻고 있다.
귀순 기자회견에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혀 눈길을 끌었던 코흘리개 막내 광호(光浩·24)군은 미국 UCLA에서 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남 광규(光圭·33)씨와 큰딸 광옥(光玉·29)씨는 결혼해 두 자녀의 부모가 됐다. 차남 명일(27)군은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광숙(光淑·25)양은 회사원이 돼 3남2녀의 자녀 모두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또 김씨의 장모(77)와 처남 처제도 단란한 가정을 꾸며 귀순 당시 11명이던 식구는 결혼과 출산으로 23명으로 늘어났다.
팔리지 않은 기도원을 관리하기 위해 가끔 남해를 찾는 김씨는 『늙어죽기 전에 반드시 통일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늘고 있는 북한귀순자들이 방황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정부차원의 보호대책이 수립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남해=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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