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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B 행시7회 트로이카] 정권따라 울고...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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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B 행시7회 트로이카] 정권따라 울고... 웃고...

입력
1999.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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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헌(韓利憲) 이석채(李錫采) 이기호(李起浩). 구 경제기획원(EPB)에서 「행시7회 트로이카」로 불리던 인물들이다. 초임관료시절부터 선두경쟁을 벌이며 일찌감치 「장관감」이란 소리를 들었던 3인은 이번 개각으로 「경제수석」까지도 경력을 함께 하는 기연을 갖게 됐다.TK PK MK 세 사람은 나이도 엇비슷하고 서울대상대 선후배인데다 고시기수도 같고 승진시기와 주요보직도 비슷했다.

그러나 세 사람의 경쟁관계는 지역적 배경으로 더 화제가 됐다. 한 전수석은 경남김해(PK), 이 전수석은 경북성주(TK), 이 수석은 전남목포(MK)출신. 넓게 보면 한·이 전수석은 강경식(姜慶植)전부총리 김인호(金仁浩)전경제수석등과 함께 「영남 EPB」그룹으로, 이기호 수석은 진념(陳稔)기획예산처장관 강봉균(姜奉均)재경부장관등과 더불어 「호남 EPB」라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뒤바뀐 운명 앞서나간 쪽은 한·이 전 수석. 한 전수석은 90년 신한국당전문위원 파견후 당시 김영삼(金泳三)총재의 「경제가정교사」가 됐고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공정거래위원장, 경제수석을 거치며 「경남고 시대」였던 정권초 최고의 경제실세로 군림했다.

이 전수석은 과장때 청와대로 파견돼 8년을 권부에서 보내며 「장관급 과장」이란 얘기를 들었다. 잠시 「물을 먹은」기간도 있었지만 문민정부 출범후 예산실장→재경원차관→정통부장관→경제수석으로 승승장구하며 「경복고 전성기」였던 정권후반부를 주도했다. 경제에 관한한 문민정부 1기가 「한이헌시대」였다면 2기는 「이석채 시대」였던 셈이다.

이에 비해 이 수석의 출세는 좀 늦은 편. 영남정권하에서 두 경쟁자가 막강파워를 누리는 동안 총리행정조정실 제2조정관(1급)에 머물러 있었고 「한이헌·이석채」시대가 끝난 뒤에야 비로서 장관(노동부장관)에 올랐다. 그러나 한 전수석이 15대 국회진출후 신한국당→국민신당→무소속등 정치유전을 겪고, 이 전수석은 한보·PCS스캔들에 휘말려 준(準)망명생활을 보내는데 반해 이 수석은 정권교체후에도 노동부장관에 유임되더니 이번엔 경제수석으로 입성, 뒤늦은 관운을 만끽하고 있다.

97년 국회청문회에서 한 의원은 『기획원에 트로이카가 있다는데 이중 한이헌씨는 가장 먼저 가고, 이석채씨는 가장 높이 가고, 이기호씨는 가장 오래간다고 하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 말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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