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수사기관의 피의자 긴급체포 남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전주지법 박범계판사는 27일 친구의 도장과 통장을 훔쳐 돈을 빼냈다가 자신의 집에서 긴급체포된 뒤 절도,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서모(58)씨에 대해 『긴급체포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체포』라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판사는 결정문에서 『서씨가 범행 후 줄곧 자신의 집에 살고 있었고 경찰관이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기까지 피의자가 이를 눈치채고 도망할 우려는 없었다』며 『이러한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것은 긴급체포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체포인 만큼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박판사는 이어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장을 위해 영장주의 원칙을 천명한 뒤 예외로 긴급체포와 현행범 체포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며 『긴급체포는 극히 제한적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결정은 최근 일선 법관들이 수사기관의 긴급체포 제도 운용과 관련, 불법성과 인권침해 등을 지적하는 글과 자료 등을 잇따라 게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검찰의 대응이 주목된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최근 법관전용 게시판에 올린 「문제 많은 긴급체포_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목의 A4용지 3장 분량의 글에서 『현행법상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기 위해서는 체포의 필요성 이외에도 범죄의 중대성과 긴급성이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수사의 편의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도 긴급체포가 남발되고 있고 특히 권한이 없는 사법경찰관에 의한 긴급체포마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특히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영장청구는 법원에서 모두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제1항에 따르면 긴급체포는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데도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는 긴급한 경우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긴급체포 사안이 아닌데도 피의자를 임의동행처럼 긴급체포한 뒤 48시간동안 인신을 구속하는 사례가 많아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한편 법원행정처가 집계한 지난해 전국의 체포형식별 구속영장청구건수에 따르면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가 1만5,292건으로 12% 현행범 체포가 4만826건으로 32%인 반면 긴급체포는 7만1,438건으로 무려 56%나 된다. 우리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긴급체포는 전체의 17.8%에 불과하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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