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큰 돈을 벌 수 있다 해도 집까지 팔아 증권을 하겠다는 영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사회 곳곳에 부는 「주식광풍(狂風)」이 급기야 40여년을 해로한 노부부의 등을 돌리게 했다.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경찰서. 주식투자 자금마련을 위해 집을 팔려던 A씨(63)가 이를 말리는 아내 B씨(60)를 폭행해 불구속입건됐다. 더이상 함께 살기 싫다며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아내 B씨는 경찰조사에서 『주가가 내릴 때면 남편은 분을 참지 못해 손찌검을 했다』며 『평생 모은 재산인 집까지 팔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다』고 울먹였다. 담당 경찰도 『마약에 중독되면 심지어 처자까지 팔려고 나선다고 들었지만 주식도 마약 못지 않은 것 같다』고 혀를 찼다.
A씨가 주식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집안에 급히 쓸 일이 있어 은행에서 5,000만원을 융자받은 지난해부터. 노부부는 살던 층을 임대주고 지하방으로 옮기는 등 돈을 갚기 위해 한마음이 됐다. 하지만 『한 번에 수천만원』식의 「증권가 횡재담」을 들으면서 마음이 기운 A씨는 아내의 만류에도 1,000만원을 들고 증권사 객장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후 A씨는 주가가 오르내릴 때 마다 기뻐했다 화를 냈다 하며 점점 주식에 깊이 빠져들었고 마침내 『집을 처분하면 억대의 자금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A씨에겐 이미 아내는 단번에 큰 돈을 거머쥘 기회를 가로막는 귀찮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 마련한 번듯한 4층짜리 다가구주택에서 다달이 나오는 250만원 가량의 임대료 수입으로 대출금도 갚고 남부럽지 않은 노후를 보낼 수 있었던 노부부. 하지만 온 나라에 휘몰아 치는 「주식광풍」은 이들이 함께 한 과거와, 함께 할 미래를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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