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에 이은 25일의 수석비서관 인선으로 청와대 비서실은 그야말로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 중심체제로 굳어졌다. 범동교동계 일원으로 김실장을 은근히 견제해온 박지원(朴智元)전공보수석이 내각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새로 들어온 이기호(李起浩)경제수석 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 박준영(朴晙塋)공보수석은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실무형이다. 기존 수석들중 정치인 출신인 김정길(金正吉)정무, 김한길 정책기획수석도 동교동계 등 정치적 세력과 연(緣)을 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김실장은 적어도 청와대 내부에서 「이면」을 신경써야 할 일은 적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내 역학구도의 미묘한 변화는 공보수석 인선에서 잘 드러난다. 박지원문화관광장관은 청와대를 떠나면서 박준영 신임 공보수석을 비롯, 김한길 정책기획수석 배기선(裵基善)한국광고공사사장 등 세 명을 추천했다. 국민회의 동교동계 의원들은 이들중 동교동계인 배사장의 발탁을 기대했고 밀었다. 반면 김실장은 외부인사의 기용방안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길수석은 정책기획업무를 맡은 지 얼마되지 않은데다 현직을 그대로 맡고 싶다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 제외됐다. 이후 외부인사인 H, N씨가 부각됐다가 다시 배사장과 박신임수석이 후보군으로 정리되는 곡절을 거쳤다.
이 대목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실장 중심체제를 굳혀준 배경이 포인트로 부각된다. 우선 김대통령이 김실장에 대해 인간적 신뢰를 갖고 있으며 실무추진력, 조직장악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힘의 균형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국민회의, 또 자민련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지 청와대내 역학구도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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