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우리 가족은 평생 처음 함께 해외여행길에 올랐다. 뉴질랜드 남섬을 일주하는 연구·조사 여행이었다. 초행인데다 안내자도 없어 지도와 호텔 안내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뉴질랜드에서 제일 높다는 아오랑기(마운틴 쿡)산의 웅장함에 압도당한 우리는 뉴네이든을 지나 스키코스로 유명한 조그만 도시에 도착했다.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작은 여관을 골라 묵기로 했다.
호텔 안내서를 보고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방 10개짜리 조그만 모텔. 비수기라 손님은 거의 없었다. 중학교 교사인 여자주인은 집을 개조해 부업으로 모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주인은 각국의 인형, 특히 고양이 인형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 집사람과 금방 친해졌다.
그날 저녁 오후11시가 되서야 잠이 든 우리 가족은 다음날 오전8시께 일어나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주인은 모텔을 비우고 없었다.
당황한 우리는 이곳 저곳을 살피다가 책상 위에서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출근 시간이 되어 떠납니다. 아침식사는 식당 테이블 위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먹고 싶은대로 익혀 잡수시고 부족하면 냉장고에서 더 꺼내어 잡수십시오.
아침 식사후 원하실 때 문을 잠그고 떠나시면 됩니다』. 메모지 위에는 열쇠 꾸러미가 얌전히 함께 놓여져 있었다. 생면부지의 이국인을 믿고 열쇠꾸러미를 맡긴 모텔 주인이 너무나 고마웠고 감동했다. 다시 그 곳을 방문하게 되면 꼭 다시 들르겠다고 생각했다.
60년대부터 해외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67년 영국에서 열린 농업발전워크숍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었는데 아프리카 인도 영국의 학자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가 그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고 발표가 있을 때마다 훈계를 하려고 들었다. 22년이 지난 89년 도쿄(東京)의 농업생산성본부(APO)회의에서는 그때와 정반대로 인도 네팔 등의 대표로부터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
예전에는 출신국 피부색 등 여러 조건으로 존경이나 멸시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저 한국인으로 해외에서 대접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처음 보는 이에게 열쇠꾸러미를 통째로 맡긴 뉴질랜드의 한 모텔 여주인 덕분에 우리 가족은 이국에서 또 다른 가족을 만난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뉴질랜드를 생각할 때면 사람좋은 모텔 여주인의 얼굴과 함께 쉽게 잊지 못할 감동이 다시 몰려올 것같다.
/구천서·단국대 농대 대우교수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