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비극의 원형 「페드라」의 작가 라신느가 세상을 뜬 지 꼭 300년.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반이 서구 어법을 본뜬 국내 최초의 「페드라」를 상연한 것이 62년.대학극의 레퍼터리로 명맥을 이어 오던 「페드라」가 한국의 장인들을 만났다. 바흐의 절망적 오르간곡을 배경으로 스포츠카를 타고 자살하는 영화 「죽어도 좋아」 만이 어찌 현대판 「페드라」이겠는가.
의자에 앉든 바닥에 철퍼덕 앉든 보는 사람 마음대로인 「페드라」, 굿거리 장단에 저잣거리 유행가가 청승의 멋을 잔뜩 부리는 「페드라」, 배우의 복장이 어딘지 우리 고유의 선과 문양을 닮아 있는 「페드라」, 원작의 시적 품격이 클래식과 우리 무속음악에 녹아 든 한국판 「페드라」의 흥취에 라신느가 깨어 날 판이다. 극단 자유의 「페드라」다.
연출가 김정옥씨가 한국판 「페드라」를 염두에 두고 올초 3개월 동안 매달려, 5막 30장짜리 원극을 8장으로 대폭 압축했다. 박정자(페드라), 박웅(테제) 등 우리 연극의 얼굴 배우들을 필두로, 채진희(외논느), 김희령(아리시 공주) 등 탄탄한 연기가 받쳐준다. 음악 작업 또한 만만찮다.
4막의 앞뒤에는 바흐, 모차르트, 바그너의 음악에다 진도씻김굿 음악과 범패를 혼합한 창작 음악을 도입(작곡 이유희·27), 한국화(化)의 의의를 새삼 일깨운다. 판소리 명인 성창순씨의 이수자인 조주선(29)씨가 지은 창도 가세한다. 본인이 직접 나와 부른다. 배우들의 의상 역시 한국적 색채가 가득하다.
공연 10일째인 6월 10일은 극단 자유가 창단한 지 33주년 되는 날. 창단기념 연회 등 흥겨운 창단 기념 행사가 겸해진다. 이 소식에 일본 극단 스바루(昻)등 일본 연극인들이 창단일에 맞춰 단체 관극을 약속하기도 했다.
박정자씨는 대학연극반 시절 이 작품 대사 16마디의 하인 역으로 출연했던 기억이 합쳐져, 타이틀 롤 연기 연습에 남다른 열과 성을 쏟고 있다.
이번 자유의 「페드라」에는 배우와 관객의 자발적 참여를 최대한 끌어 내는 특유의 집단창작방식이 또 다시 발휘된다. 중간부인 4막끝, 10여분 간 배우와 객석이 나누는 대화 시간이 그것.
정신분석 등을 원용, 사랑의 원형을 탐색하는 시간은 색다른 관극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6월 1~27일 문예회관소극장. 화 7시 30분, 수·금 3시 7시30분, 목 7시30분, 토 3·6시, 일 3시 (02)765_5475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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