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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5월 광주, 그 역사의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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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5월 광주, 그 역사의 긴장

입력
1999.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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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열아홉돌. 올해는 5월 광주를 기념하는 행사가 유난하다. 호남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광주의거」야말로 국민의 정부를 만든 원천이라고 하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망월동묘역 기념식장은 동서화합과 민군화합을 염원하는 다채로운 행사로 메워졌다.집권당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5·18 정신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이례적이며 과거에는 폭도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을 「폭력과 억압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의로운 시민들」로 기억하자는 국무총리의 칭송에 군수뇌부들이 고개숙여 화답한 것도 주목할 만한 장면이다.

국무총리는 5월 광주를 잉태했던 유신체제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군수뇌부가 단정하게 차려입은 군복으로부터 무력진압을 단행했던 그 사람들의 악몽을 읽어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희생자 유가족 또는 광주시민들은 아무래도 그들의 말과 행동을 문자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가해자의 도시로부터 달려온 국악단이 정성스레 연주하는 진혼곡은 어쩐지 서먹서먹한 거리감을 메워주었다. 이만하면 화합의 마당은 펼쳐진 셈이다. 더욱이 방관자의 도시였던 서울에서도 첫 공식행사가 열린 것은 5·18에 대한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의 관심이 새로워졌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의례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집권당이 바뀌면 또 한 차례 폄하운동이 일어나 아물지 않은 상처를 헤집는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요즘에 들어서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조금은 야단스럽게 구는 것이 정권교체의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표정만으로는 죽음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당시의 처절한 절망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있는지 의구심이 가는 것이다. 광주를 현장에서 겪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그 기억을 지워야만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일 터인데, 지도급 인사들이 기념식장에서 아낌없이 던지는 현란한 치장이 광주시민들에게 저항과 죽음을 강요한 폭력적 담론을 단순하게 뒤집어놓는 것인 한, 광주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당신은 그 때 무엇을 했느냐는 한 시민의 질문에 국방장관은 남몰래 많이 울었다고 답했다. 장관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산천이 다 울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군의 수뇌가 울었다고 고백하는 데에 꼬박 19년이 걸렸다. 그러나 정작 무력진압 명령을 내렸던 당사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웃고 있다. 국민적 관심은 높아졌어도 아직 광주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지 진정 이해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 5월을 떠올리면 아직도 숨을 죽여야 한다. 열흘동안 광주는 화염에 휩싸였다. 화염뒤엔 주검이었다. 어떤 말이 5월의 광주를 부족함없이 담아낼 수 있을까. 그 해 오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소멸하던 사람들이 전하고 싶어했던 말을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혁명과 반역의 이율배반으로 몰리던 절박한 순간이 왜 강요되었는지,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평범한 인간이기를 왜 거절당했는지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광주시민들에게 19년은 자신과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눈물은 후세의 것, 되새김은 남의 것이 되었다.

때로는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혐오를 피해 패러디로, 독설로, 풍자로 숨어다녔던 당시의 지식인과 시인들의 고해성사도 아직 완료된 것은 아니다.

시민학살로 권력을 찬탈했던 집단이 민주주의와 구국의 명분을 여전히 내세울수 있도록 허락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살아나거나, 광주의 희생에 기대어 민주화 공적을 독점하려는 지배세력들의 폐쇄적 행동이 자주 정당화된다면, 망월동 묘역의 화합행사는 또 다른 왜곡을 낳을지 모른다.

5월의 광주는 여전히 우리시대를 편치않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며 죽은 자들은 새로운 긴장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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