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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산문집] 우리문학 속내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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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산문집] 우리문학 속내 엿본다

입력
1999.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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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신경림.김윤식.김병익 4인 산문집 -글의 여러 형식 중에서 산문(散文)만큼 글쓴이의 기질이나 재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도 없다. 시나 소설, 평문은 틀이 있다. 그러나 주어진 형식이 없이 마음 가는대로 쓰는 산문은 그야말로 한 사람의 생각을 무정형으로 풀어놓는 공간이다.

그래서 웬만큼 글을 써본 이들도 산문 쓰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산문을 쓰게 해보면 그의 본모습과 글솜씨를 알 수 있다고도 한다.

우리 문학계의 중진들인 소설가 박완서(68) 시인 신경림(64) 평론가 김윤식(63) 김병익(61)씨가 4인 산문집 「아름다운 성찰_저무는 20세기를 바라보며」(한울 발행)를 냈다. 제목처럼 아름다운 생각과 글맛을 주는 산문집이다.

좀처럼 한 자리에 모으기 어려울 것 같은 이들 네 사람의 연작산문이 기획된 것은 작가회의가 발간하는 기관지 「작가」가 98년 봄호부터 계간지로 혁신하면서. 네 사람은 각각 원고지 50장 안팎의 글들을 1년간 4차례 기고했다.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은 네 사람의 글 16편은, 그러나 모아놓고 보니 한국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보여주는 것이자 한국문학의 비밀스런 부분을 엿보게 하는 생생한 현장이다.

박완서씨는 「두부(豆腐)」에서, 두부라는 물건으로 우리의 치욕스런 정치사를 매섭게 비꼰다. 『감옥을 나오면서 먹는 두부는 감옥살이보다 더 견디기 버거운 속세 밑바닥의 가장 쓴 맛일 테고, 속세가 그를 받아들이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그는 본다.

「재임하는 동안 실로 많은 사람에게 두부를 먹인」 한 대통령은 그러나 출옥하면서 환영나온 인파에 싸여 두부를 얻어먹기보다는 여전한 표정으로 으스댄다. 박씨는 말한다.

『… 한 모의 두부를 향해 고개숙였을 때의 극도의 자기모멸을 경험해봐야 한다… 그들은 왜 그런 통과의례로부터 면제되어야 하는가. 그 무미의 두부 속에 그다지도 쓴 맛이 숨어있다는 걸 맛본 권력자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사랑받는 평범한 이웃으로 돌아온 권력자 또한 한 사람도 없는 게 아닐까』

신경림씨의 산문은 그의 시구절이나 사람처럼 구수하고 자연스럽다. 노을, 그늘,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을 매개로 일어나는 옛 시절의 기억들_사람, 사건, 장면들을 수묵화를 그리듯 풀어놓는다.

아버지의 광산과 할머니의 틀국숫집 이야기, 「눈을 떠도 눈을 떠도 티끌이 날려오는」 서울로 올라온 뒤의 문학수업과 결혼생활 이야기 등.

『생각해 보면 내게는 길만이 길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바깥 세상을 내다볼 수 있었고 또 바깥 세상으로도 나왔다』

김윤식씨는 자신의 처녀작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등 평론집에 얽힌 얘기들을 들려준다. 지금도 『어떻게 그 글들을 다 읽고 쓸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왕성한 다상량(多商量)과 다작(多作)의 노평론가가 보여주는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진지한 자세는 경외스럽다.

평전 「김동리와 그의 시대」를 쓰면서 「단 한 줄도 근거없이 쓸 수 없다」는 기본전제 하에서도, 작가의 환각과 환청까지 들어가며 그의 모든 인간적 고뇌까지를 작가와 같은 입장에서 쏟아붓는 평론가의 모습은 후배 문인들에게 귀감이 될만하다.

김병익씨의 글은 가장 솔직한 자기고백이다. 모태의 기억에서부터 성장기와 대학생활, 기자에서 문학평론가로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담배 끊고 술 끊은 이야기, 바둑두고 커피마시는 호오(好惡)를 숨김없이 들려준다.

그가 실패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고백하면서 말한 『개심(改心)하자 마자 파탄이 오는, 운명과 같은 아이러니』에 고개를 끄덕일 이들 많을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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