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개각은 이례적으로 일찌감치 예고됐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인선을 확정하는 데에는 간단치 않은 곡절이 있었다.○…이번 인사안은 22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청와대 조찬회동에서 공식 확정됐다. 그러나 큰 윤곽은 그 전에 이미 수일간에 걸친 양측의 비공식 협의를 통해 그려졌다는게 정설이다. DJP회동 전인 21일 벌써 몇몇 각료내정자들이 청와대로부터 임명 통보를 받았던 게 그 근거.
퇴임 및 신임 장관들에 대한 유임, 발탁 통고는 21일부터 23일밤 늦게까지 이뤄졌다. 가장 빨리 입각 소식을 안 사람들은 청와대 수석출신 임동원(林東源)통일, 강봉균(康奉均)재경,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장관등 세 사람. 이들은 모두 21일 김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의 인사 대상자들에게는 청와대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이 22일 오후부터 23일 오후까지 경질 또는 발탁 여부를 통보했다.
○…김대통령은 박지원장관에게 입각의 언질을 주고서도 23일 늦게까지 다시 잡을까 고심하다 박장관 본인의 「탈(脫)청와대」 희망을 알고 결국 「놓아 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에비해 천용택(千容宅)국방·신낙균(申樂均)문화관광장관등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전국구의원 포기 의사까지 밝히며 현직 유지를 강력히 희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신장관은 결국 물러나게 된 반면 천장관은 안기부장으로 영전하게 돼 대조를 이뤘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평가를 받는 부분은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의 법무장관 이동. 김총장은 임기가 2개월여나 남아있는데다 「검란(檢亂)」 파동의 전력도 있어 장관 후보로는 쉽게 떠오르지 않다 23일 오후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 장관 입성에 성공했다. 이에대해 여권내에서는 『박상천 전법무장관의 강력히 천거가 주효했다』『한 번 신임하면 좀처럼 쉽게 맘을 거두지 않는 DJ의 독특한 인사스타일 탓이다』는 등의 추측이 만발했다.
○…신임 각료중 가장 늦게 장관 내정 사실을 안 사람들은 2~3명 정도로 23일 밤 11시께야 비로소 김실장의 전화를 받았다는 후문. 최대 난제는 여성 각료 인선. 모대학 총장등 교섭대상자들이 『입각하면 조직이 흔들린다』며 고사하는 바람에 청와대는 23일 오후에 부랴부랴 다시 인사존안자료를 챙기는 등 곤욕을 치렀다. 또 강원지역 안배 케이스로 입각이 결정된 이상룡(李相龍)전강원지사의 부서배치문제도 막판까지 남았던 미제중 하나. 핵심부는 당초 이전지사의 건교부차관 전직을 감안, 이건춘(李建春)국세청장과 함께 건교장관에 집중 검토하다 결국 이청장을 건교부에 배치하고 이전지사에게는 노동부를 맡기는 것으로 교통정리했다. 김광웅(金光雄)중앙인사위원장은 초반부터 유력하게 부상했지만 최근 「언행」에 대한 일부의 문제 제기때문에 최종 낙점이 늦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막판에 진통이 빚어짐에 따라 김중권실장은 23일 밤 늦게까지 DJP 사이를 수차례 오가며 의견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한편 김총리도 청와대측과는 별도로 자민련 출신 퇴임장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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