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는 현대의학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1940년 도입된 페니실린을 필두로 항생제는 지난 반세기동안 감염질환으로부터 수많은 인류를 구해내 「기적의 약」으로 불리웠다.하지만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약제 내성(耐性)의 문제가 새롭게 등장, 인류가 항생제 이전의 시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항생제 내성이란 세균이 항생물질에 대항하는 내성을 만들어 항생제의 효과가 없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어떤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했고, 과거 쉽게 고칠 수 있던 질병을 내성균 감염 때문에 치료하지 못하는 현상이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항생제가 처음 개발됐을 때부터 나타났다.
예를 들면 피부감염 폐렴 등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은 1941년만 해도 페니실린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3년 뒤부터 내성 균주가 퍼지기 시작해 현재는 페니실린에 반응하는 균주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페니실린으로 치료되지 않는 포도상구균을 퇴치하기 위해 메티실린이 개발됐지만 역시 몇 년만에 무력화했다. 항생제 남용이 심한 우리나라는 종합병원에서 분리되는 포도상구균의 70~80%가 메티실린에 내성을 보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20여년간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을 치료하기 위해 반코마이신이라는 강력한 항생제가 집중 사용되면서, 이 약제에도 내성을 보이는 균이 출현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아니나 다를까 96년 일본에서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보이는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했다.
페닐실린은 또 폐렴 뇌수막염 등의 가장 흔한 원인균인 폐렴구균의 특효약으로 30년 가까이 이용돼 왔다. 그러나 이에 내성을 보이는 폐렴구균의 출현으로 우리나라의 페니실린 내성률은 세계 최고수준인 70~90%에 달한다.
항생제 내성의 확산을 저지하려면 항생제가 함부로 사용하면 안되는 특수 치료제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일반 소비자, 의사, 약사, 제약업게, 정부 모두 합심해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또 항생제 내성은 국가나 대륙간에도 전파되는 문제인 만큼 이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협력도 필요하다.
이미 유럽에선 18개국이 참가하는 「유럽 항생제 내성 감시시스템(EARSS)」라는 연구기구를 만들어 공동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96년 13개국 15개병원이 참여하는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연합(ANSORP)」이 결성됐다.
이와 함께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 예방백신의 확대 실시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는 각종 세균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돼 암담한 21세기를 맞게 될 것이다.
/송재훈·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과장·성균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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