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가을, 수업중 갑자기 창문에서 교실안으로 유인물이 한 무더기 뿌려졌다. 밖에서 선배 두명이 구호를 외쳐댔다. 주위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였지만 제대로 대오가 형성되기도 전에 두 선배는 경찰에 두들겨 맞아가며 끌려갔다.대학 1학년이던 나는 두려움과 권력의 폭력성에 분노를 느꼈다. 당시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군부세력은 젊은이의 눈에는 용납할 수 없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나약했고 학생들은 힘이 없었다. 노동자들만이 정권과의 투쟁에서 가능성있는 부대였지만 조직화하지 못했다. 84년 나는 부천의 한 보일러 공장에 프레스공으로 취업하면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끔찍한 노동환경에서 일했지만 나를 견디게 했던 것은 세상을 압제에서 해방시키자던 동료들과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지옥과 같은 노동현실은 우리 실천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확인해주는 자양분이 됐다.
노동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조합도 진전했다. 87년이전까지 위장취업자이던 나의 신분도 노조 상급간부로 바뀌었다.
최근 금속연맹의 지도부 전원에 대해 14, 15일 집회와 관련, 경찰과 충돌이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사실 우리의 생활이라는게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박봉에 시달리지만 사회적으로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시민운동은 조명을 받는데 노동운동은 잘해봐야 감옥이고 자칫 정체된 실무자로 전락하기 쉽다. 정치적으로도 노동운동 경력은 거의 쓸모가 없는 풍토다. 때로는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퇴물로 취급받기조차 한다. 내부의 갈등과 분열은 더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솔직히 노동운동가로서 지금처럼 고달펐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노동현장을 둘러싼 변화는 전혀 피부에 와닫지 않고 오히려 IMF로 인해 점점 더 암울한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은밀한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직업 자체가 남을 위한다는 데 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라는 말이 있다. 생산 즉 노동을 하지않으면 사람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노동운동은 자본의 이윤추구 논리에 대항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운동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참으로 깊고 깊은 의미를 가진 운동이다. 이런 운동을 주야로 하고 있고 거기다 약간의 생활비까지 생기니 이 얼마나 짜릿한 직업인가?
정부가 아무리 노동운동을 굴복시키려고 해도 당장은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노동운동의 본질에 있다. 사람이 죽을 때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결국 사람 살만한 세상을 남기고 가는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이수봉 38·금속노련 고용안정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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