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 깊어가는 삼성그룹 -현 정부 들어서도 순항을 거듭해 온 삼성그룹이 총수 사재출연의 암초에 걸려 속병을 앓고 있다. 삼성자동차 투자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건희(李健熙)회장이 수천억원대의 사재를 출연하라는 정부 요구를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론에 밀려 명분없이 「백기(白旗)」를 들 수 만은 없는 사면초가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고위관계자는 『토끼몰이식으로 사재출연을 강요하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느냐』면서 『모양새를 갖춰 사재출연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정부의 사재출연요구가 확인됐을 뿐 아니라 여론도 다소 불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어 사재출연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회장의 「아킬레스 건(腱)」인 삼성자동차 투자실패의 책임을 사재출연으로 묻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경우 이 회장의 그룹총수 위상에 치명타를 입게 되는 것은 물론 재계 전체에도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 온다는 판단에서다.
삼성그룹 관계자들은 23일에도 해당 부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주요언론사에 『사재출연 여론몰이는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같은 그룹 안팎의 분위기를 반영, 삼성 내부에서는 정부의 사재출연 요구를 수용하되 이 회장 경영권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사재출연 규모를 줄이는 대신 삼성자동차 사업에 깊이 개입한 수뇌부인사를 경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이 회장이 기업 경영과 직접 관련이 없는 명예직에서 물러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으나, 삼성측은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등 주요부서의 임직원들은 일요일인 23일에도 대거 출근, 정부와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구조조정본부 고위관계자는 『자본주의 원칙과 주식회사 주주의 유한책임 등을 들어 삼성이 정부에 대항하고 있다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차분하게 입장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본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 회장이 자발적으로 사재를 출연하도록 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며 『정부의 사재출연 요구가 확인된 이 시점에서 즉각적으로 사재출연을 발표할 경우 삼성은 물론 정부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과 이회장이 이미 사재를 출연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고, 그 규모와 방법을 놓고 막판 고민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이 회장과 측근들이 정부가 사재출연을 요청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수차례 숙의했다는 정보가 재계의 안테나에 잡힌 점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재계는 사재출연 규모와 방법에 대한 결정은 사재출연 논란이 물밑으로 잠수한 후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삼성은 사재출연에 대한 입장정리를 내달초까지는 매듭짓기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 규모는 2,000억원 이상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자동차빅딜 협상을 오래 끌었다가 이 회장 경영권 문제까지 거론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른 시일내에 삼성측의 결정이 나올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사재출연이 재계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다.
/김동영기자 dy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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