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산업자원부 장관실에서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레이프 요한슨 볼보그룹회장이 박태영장관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통역실수 논란이다.박장관과 배석자들은 요한슨회장이 『한국의 인프라 등에 50억달러 정도 추가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들었다. 박장관은 요한슨회장의 이 엄청난 선물보따리를 다음날 중앙일간지 경제부장들에게 털어 놓았다.
이 뉴스가 외신에까지 전해지자 볼보측은 요한슨회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볼보측은 『건설기계 경기가 회복되려면 한국이 인프라에 50억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밝혔다. 볼보의 50억달러 투자설은 통역상의 실수이며, 볼보가 계획중인 투자금액은 9,000만달러 정도라고 못박았다.
산자부는 당시 현장에 「영어에 능통한」 배석자가 4명이나 있었고, 요한슨회장이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발언내용의 녹음이 없으므로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아직 판가름하기 어렵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산자부 장관실」이 국제적인 망신을 면하기 힘들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선 산자부의 주장이 사실이고 볼보측에서 말을 번복했을 경우 일차적인 비난은 당연히 볼보에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확정되기도 전에 그러한 면담내용을 서둘러 공개한 박장관 역시 거액의 외자유치를 자랑하고자 하는 공명심이 앞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볼보측 주장대로 산자부의 통역상 실수라면 문제가 이만저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일국의 장관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국제적 망신뿐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들을 믿고 나라일을 맡기겠느냐는 불안을 갖는 게 당연하다.
그것은 단지 영어통역의 문제가 아니다. 공직운용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고 업무상의 해이함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느냐는 우려를 갖게 한다.
산자부가 아무리 억울해 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 볼보와 한국의 산자부 중에서 어느쪽을 더 신뢰할지, 우리가 자신을 갖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실 문맥으로 볼 때 『볼보가 한국의 인프라 등 분야에 50억달러를 투자할 것을 고려중』이라는 산자부의 주장은 우리가 보기에도 어색하다.
볼보는 인프라에 투자하는 다국적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정확하게 사실을 가려내야 한다. 동시에 각 부처의 대외접촉이 갈수록 일상화하고 있는 만큼 전문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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