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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에세이]석굴암 일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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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에세이]석굴암 일출제

입력
1999.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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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토함산 석굴암에는 평일인데도 관람객들이 붐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행렬이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내걸린 지등들의 도열 아래로 기다랗다.석굴암 앞에서 동해쪽을 내려다보면 대종천이 흘러나가는 널따란 골짜기 건너에 멀찍이 나지막한 산등성이들이 가지런하고, 그 너머로 보인다는 수평선은 운해에 가렸다. 다음날 새벽의 일출구경은 일기예보가 비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석굴암 안은 침침하다. 옆문으로 전실(前室)에 들어서면 전면(前面)을 유리로 칸막이하여 접근을 막고 있고 그 안쪽의 석실 한복판에 본존불(本尊佛)이 인공조명을 받고 앉아 있다.

토함산은 2000년 1월1일 아침 일출시각이 7시27분,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일출이 빠른 울산 방어진보다 4분이 이르다. 이 첫 일출의 햇살을 받아야 할 석굴암의 안이 이렇게 햇빛에 차단된 채 어둡다.

우리나라에서 새 천년의 첫 서광이 석굴암을 비춘다는 것은 민족의 영광이다.

석굴암은 우리의 첫손 꼽는 문화유산이다. 우리 문화의 진수(眞髓)이자 총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등과 나란히 인류앞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스런 보물이다.

국보 제1호를 바꾸자는 논의가 나왔을 때 여론조사결과 훈민정음 다음으로 석굴암이 후보로 천거되었을 정도로 한국문화를 대표한다.

석굴암은 또 국토통일과 호국정신의 상징물이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신라의 문무왕이 스스로 왜구의 침략을 막는 수호신이 되겠다고 바닷속에 뼈를 묻은 자리, 그 수중릉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석굴암이 세워졌다.

새 천년 첫날 아침의 태양은 석굴암에 맨 먼저 뜰뿐 아니라 최정면에서 뜬다. 석굴암의 방위는 정동(正東)에서 동동남으로 30도의 각도이고 이것은 불교의 명절인 동짓날의 일출방향과 똑 같다. 동지에서 신정까지는 불과 열흘, 천문대에 물으니 2000년 1월1일 석굴암의 일출각도는 동동남으로 29도다.

이렇게 새 천년의 우리 태양은 석굴암을 위해 뜨듯이 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빛이 석굴암 대불(大佛)의 얼굴에는 닿지 않는다. 1964년 정부가 석굴암을 보수하면서 앞에 목조가구(架構)의 전실을 세우고부터 석실안은 태양을 잃었다. 대불은 실명을 했다.

이 전실은 건조 당시부터 논란이 되었고 지금까지 그 논쟁은 이어져온다. 전실은 존재 자체의 고증이 불충분한채 석실안의 풍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설치된 것이나 설령 본시 있었다 하더라도 그 원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임의로 첨가한 것은 복원이 아니라 훼손이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고개숙이지 않고 있다.

경주에서 어린이박물관학교를 맡고 있는 윤경렬씨는 1964년 이전의 석굴암 일출을 생생히 기억한다. 동해에서 해가 얼굴을 내밀면, 특히 가을부터 하늘이 맑아지면서 해의 위치가 중앙으로 다가오는 철이면, 토함산 산마루가 벌겋게 물들면서 석실안의 석불상이 직사광선에 조명되어 눈부셨다는 것이다.

그 비광(秘光)의 신비를 35년동안 전실이 봉쇄해 왔다.

윤씨에 의하면 당시 일출 때면 석실입구의 두 석주를 위쪽에서 가로지르는 무지개돌이 바로 불상의 두 눈에 그림자를 긋고 있었다고 한다. 이 무지개돌은 1913년 일제가 석굴암을 완전 개수하면서 원형에 없던 것을 새로 얹은 것인데 지금도 그대로 놓여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강우방관장은 석굴암의 전실이 아직껏 버티고 있어야할 까닭을 모르겠다고 한다. 1974년 현지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새로 만든 전실을 뜯어고치도록 하라』고 지시까지 했는데도 흐지부지 되었다.

대통령직속의 새천년준비위원회가 19일 발표한 2000년맞이 마스터플랜에는 일출제 일몰제 행사가 계획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장소 등은 아직 미정인 상태다. 망설일 것이 무엇인가, 일출제로는 석굴암이 마땅하다.

새로운 천년의 시작이 지나간 천년문화의 꽃인 석굴암의 잃어버린 빛을 찾아줄 계기가 될 것이다. 활발한 논의는 거쳐야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전실을 들어내는 것이 좋다.모르는 것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확실한 근거도 없는 전실이 천년의 태양을 막아설 권리는 없다.

국토통일의 기념비인 석굴암, 국가안녕의 서원탑(誓願塔)인 석굴암, 이 석굴암의 대불에 민족의 기원을 담은 햇살을 비추자. 천년의 얼굴에 새 천년의 햇살을 비추자. 어느 인공적인 조명이 태양의 조명보다 더 빛나겠는가. 석굴암은 한낱 불교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문화의 광휘다.

이 일출제를 전세계에 생중계하면 새로운 천년을 맞는 한국의 얼굴은 햇빛받은 석굴암 대불의 얼굴처럼 찬연히 빛날 것이다.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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