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_간디」가문의 계승자로 꼽히는 소니아 간디(52) 인도 국민회의당 당수의 뉴델리 자택 바깥에선 연3일째 수백명의 시위대와 고위당직자들이 몰려들어 혼잡을 이루었다. 17일 전격적으로 당수직 사임을 발표하고 두문불출하고 있는 그에게 사임을 거두라는 설득전을 펴기 위한 행렬이다.간디 당수의 전격 사임발표가 9월로 예정된 총선에 최대 변수가 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행보에 인도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임 발표 후 그를 대면한 국민회의당 당직자들은 『아직 당수의 심중은 흔들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현지 언론들은 사퇴파문을 몰고온 당내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로 분석한다.당초 인디라 간디의 태생문제를 들어 「비인도인에게 인도 정치를 맡길 수없다」며 반기를 든 당내 실력자 샤라드 파와르가 91년 총선에서 총리 후보였고 이번 총선도 노리고 있었다. 결국 차기 총리후보로 낙점을 받아 놓은 간디 당수가 당의 분열을 잠재우기 위한 고강도 처방을 내렸다는 것이다.
간디 당수는 96년 총선 패배이후 정권에서 밀려난 국민회의당으로서는 정권 재창출에 절대절명의 카드. 지난달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인도인민당(BJP) 연정체제가 붕괴되면서 9월로 확정된 총선에 간디 당수의 「네루_간디」가문이라는 화려한 배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권당인 BJP도 간디의 행보에 신경을 쓰기는 마찬가지. 국민회의당에서 내분이 일어나기 전부터 간디의 태생을 문제삼은 것도 BJP였다.
간디 당수 개인으로서도 중요한 갈림길이다. 라지브 간디와 결혼함으로써 인도 최고의 가문인 「네루_간디」가문에 합류했지만 84년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총리가 시크교도에 암살되고 91년 남편 라지브 총리마저 잃은뒤 정치권에는 발을 끊었던 그였다. 그러나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자와할랄 네루 총리를 시작으로 「네루_간디」가문이 맥을 이어온 국민회의당의 설득으로 지난해 3월 당수직으로 복귀하면서 그는 가문의 화려한 컴백으로 주목받아 왔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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