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붙이끼리도 남처럼 왕래도 없이 무심하게 살아가기 쉬운 게 요즘 우리의 경황없는 삶이다. 그나마 명절이라도 있어 친인척간에 얼굴도 보고 근황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전 서구 월평동 진달래 아파트에 사는 반극동(41·철도청 6급 공무원)씨네는 일가 친척들이 서로의 사정을 손바닥처럼 알고 지낸다. 반씨가족이 8년째 발행하고 있는 가족신문 덕분이다.『91년에 경북 영주 철도청에 근무했었는데 고향인 울진의 한 목사님께서 교회소식지를 계속 보내주었어요. 고향 한번 찾아가기 힘들고, 어르신들 찾아뵙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고향소식을 손금 보듯 알 수 있어서 너무 좋더군요.』 반씨가 91년 「들꽃처럼 웃음으로」라는 가족신문을 창간하게 된 동기다.
5월 현재까지 발행된 「들꽃처럼…」은 모두 36회. 편집장이자 취재·편집기자 역할은 반씨가 맡고, 기획 및 원고정리는 부인인 박현숙(36)씨, 인기코너인 「일기」란 작성과 봉투출력·우표붙이기와 같은 허드렛일은 인중(13) 진주(9) 두남매가 담당하고 있다. 발행주기를 따로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2∼3개월마다 한번 꼴로 발행하는 것이 원칙. 한번에 500∼700부를 찍어 주소를 아는 친척들 집에는 모두 우편으로 붙여준다. 지난해부터는 인터넷에 홈페이지(http:my.netian.co./~bandong)도 개설했다. 한번 소식지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인쇄비에 봉투비용, 우표값까지 합쳐 평균 20만원 안팎. 적지않은 시간과 품, 비용이 들지만 가족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생각에 언제나 보람차다.
『94년 고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하고 96년 남편이 연수 때문에 바빴을 때 두 번 발행을 못했는데요. 경비가 모자라서 그런줄 알고 친척들이 경비를 보내주었어요. 정말 뿌듯했지요. 한집에 살아도 사실 서로 잘 모르잖아요.』 소식지를 만들 때마다 소녀처럼 마음을 들뜬다는 박씨의 말이다.
「결혼 안한다는 영식이 처남은 지금 열애중입니다」와 같은 「연예」(?)기사부터 「할아버지, 농사짓는 것은 힘드니까 하루에 한번씩만 하세요-경북 울진 할아버지에게 달님이가」와 같은 안부편지까지, 내용은 늘 알차고 재미있다.
최근호엔 이런 1면 톱 기사도 눈에 띈다. 『82년 녹내장으로 실명한지 17년 되신 형님이 정상인도 하기 어려운 공부를 98년부터 시작해서 5개월만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셨습니다. 등하교 길에 손과 발이 되어주신 형수님과 조카 헌준이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모두 격려를 보냅니다.』
가족들의 대소사를 시시콜콜 취재하다보니 박씨가족은 이제 집안 일에 관한 한 「박사」가 다 됐다. 직장생활을 하며 소식지를 만드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반씨는 아직도 의욕이 대단하다.
『아이들의 성장기와 우리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아들 딸 장가갈 때 물려줄 재산목록 1호죠.』
글=허윤정(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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