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잃어버린 취재노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잃어버린 취재노트

입력
1999.05.19 00:00
0 0

19년 전 광주 민주화운동 취재노트와 스케치사진들을 잃어버렸다. 계엄군이 시민군의 저항을 진압한 날부터 일주일동안 광주에서 보고 들은 것을 메모한 노트에는 당시 검열망을 통과하지 못한 말과 풍경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언젠가 햇빛 볼 날을 기대하며 사무실 서랍 깊숙이 보관해 두었는데, 얼마 안되어 통째로 없어졌다. 서랍속의 사물이 없어진 일은 그 때 말고는 없었다. 사석에서 광주취재 얘기를 했다고 쫓겨난 기자도 있었다.■취재노트 내용 가운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어느 초등학교 학생의 말 한마디다. 일주일 휴교끝에 개교하던 날 아침 한 초등학교 학생이 교문 앞에서 친구를 만나 반가워하며 『○○부대 군인들 참 징하지, 잉!』했다. 휴교중 보고 들은 참상을 그런 말로 확인한 것이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이 이처럼 짧고 상징적으로 표현된 말이 있을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어야 할 국군이 그때 광주시민들에게는 그렇게 투영되었다.

■잃어버린 사진 속에는 망월동 묘지 합동장례식 스케치사진이 많았다. 아빠의 영정사진을 들고 서있는 코흘리개 아이의 얼굴에 맺힌 눈물방울이 강조된 사진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기자의 서랍속으로 들어갔었다. 전남도청 앞 체육관 마루바닥에 며칠간 방치됐던 시신들은 머리카락이 비어져나오는 엉성한 관으로 참혹한 모습이 가려졌다. 그러나 부패의 악취는 막을 수 없었다. 시신이 수습돼 유택이라도 갖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19년이 지난 오늘 광주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처음으로 국방부장관이 참석했다. 진압병력으로 투입됐던 공수부대 여단장 등 광주지역 군부대 지휘관들까지 모습을 드러내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했다. 가해자측 수뇌였던 전직 대통령은 피해자측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호남땅을 누볐고, 가장 큰 피해자였던 김대중대통령은 용서와 동서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해자측은 폭동진압이었다는 당위론을 고집한다. 잃어버린 노트에 이런 역사의 반전 예측은 적혀있지 않았다. /문창재 논설위원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