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혜(金善惠·37·여)씨는 최근 작은 난(蘭)화분과 양말 한 세트를 배달받았다. 교단에 선 뒤 처음으로 배출한 졸업생들이 때늦은 스승의 날 선물을 보내온 것이다. 20년전 힘겹게 발을 디딘 야학에서 이젠 교사로 변신한 김씨에게 제자들의 선물이 주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김씨가 서 있는 교실은 서울 동대문 휘경동에 위치한 「상록야학」. 제자들은 10대 근로청소년들도 간간이 섞여있지만 대부분 40~50대, 초로의 만학도들이다. 같은 야학출신 교사이기에 학생들도 각별한 정을 느끼는 듯 교실은 늘 빼곡하다.
2남2녀의 장녀인 김씨는 75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진학을 포기했다. 가방공장의 여공이었던 김씨에게 인생을 뒤집는 계기가 된 것은 상록야학의 학생모집 벽보. 주경야독의 고된 생활을 마다하지 않으며 2년과정인 야학 중학생이 된 지 5개월만인 79년 4월, 그는 고입검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했고 이듬해 경희여고에 들어갔다.
졸업후 그는 생활전선에 다시 뛰어들었지만 집안 형편이 나아지던 93년 아버지가 대학진학을 권유, 32세의 나이로 한양여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인 96년 김씨는 그토록 바라던 유치원 교사가 됐고 첫 출근하던 날 바로 인생의 출발점이었던 상록야학으로 돌아와 중학 사회과목을 맡았다.
그는 3월 유치원교사를 그만두고 한국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 3학년에 편입했다. 졸업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지만 야학일은 계속할 계획이다.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20년전의 자신을 향해 백묵을 집는 김씨는 『「촌지 봉쇄」등을 이유로 스승의 날에 휴교했던 정규학교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또하나의 출발을 준비중이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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