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이 왜 두려운가/양창순 지음·현대문학 발행 -나는 날마다 「우리들」로부터 탈주중이다, 라고 적으면 내 자신이 퍽이나 과격한 자기애를 지닌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나만의 것은 있는 것일까 하는 불안 속에서 꿈꾸는 탈주일 뿐. 「나만의 것」이란 제목의 시집을 내놓고 나니 곧잘 『당신만의 것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도 바로 그것을 알고 싶어서 이런 제목을 정한 것인데.
삶이란 진정한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라고 말한 숱한 인생의 선배들이 있었다. 내가 「나」와 동행하면서 친구도 만나고, 애인도 만나고, 적도 만나면서 엮어가는 이야기, 그게 삶이라고. 오늘은 책을 통해서 또 한 사람의 인생선배를 만났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이 왜 두려운가」라는 긴 제목의 책의 저자인 정신과의사 양창순. 항상 고민하지만 정작 맞닥뜨리기 두려워하는 「나」와의 대면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를 바꾸는 과정과 새로운 「나」의 탄생까지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당신의 무의식을 들여다 본다」는 식의 정신과 의사들의 에세이에 거부감이 있던 나는 이 책을 제법 빠른 속도로 읽었다. 저자가 잘 읽히도록 해놓았던 까닭에. 너무 사소한 예들에 치우쳐 큰 줄기를 놓치는 위험도 잘 피해간 글솜씨가 가속의 이유가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숙명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이미 우리 시대의 한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명제화했지만, 이 명제의 수용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저자는 외로움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여 관통해보라고 충고한다. 옳은 말씀, 나는 중얼거린다.
『사람은 누구나 때로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 혼자일 때처럼 완전한 자유를 경험하는 순간이 어디 있는가. 거기에는 오로지 나와의 관계만이 존재한다. 혼자 마음껏 울 수 있는 자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자유를 우리는 남과의 공간에서는 경험하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인생의 선배 앞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다.
나도 후배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실에서 내밀한 나만의 공간이 확보되지 못하면 공상 속에서 가져보고 그마저 안된다면 책 속에서 공간을 마련해보라고. 사람들은 타자와는 친하려고 노력하면서 왜 자기와의 사귐을 게을리하는 걸까. 사람들은 왜 그럴까.
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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