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수행하는 스님들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은 많다. 불가에서는 근기(根機·종교적 소질)라 해 수행자에 따라 맞는 수행법을 권한다. 한국 불교에서는 선(禪)수행, 그 중 화두를 보고(생각하며) 수행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으뜸으로 친다.
그러나 구도, 수행의 길이 어찌 하나일까? 간화선, 행선(行禪), 와선(臥禪), 염불, 묵언…. 모두 만물의 이치를 깨치고 이치와 내가 하나됨을 아는 길이 아닌가? 또 있다. 이른바 「예술 수행」. 스님들의 예술 수행에는 어떤 뜻이 담겨있을까?
◆선묵화 수행 수안 스님
『화두를 들고 선을 하고, 염주를 들고 염불하듯,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요』 예술 수행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답은 간단했다. 『한국 선불교에는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 해서 노동을 강조하는 전통이 강합니다. 몸을 붙들어맨다고 수행이 되는 건 아니지요. 그림을 그리면서 정신을 붙들어매고 수행정진한다는 생각입니다』
「괴짜, 개구쟁이 스님」으로 통하는 수안. 활달한 필치의 선묵화에는 힘찬 먹선과 경쾌한 구도, 해학적 요소가 어우러진다. 스님이 그린 달력에 「막걸리 한사발 열무김치 풋고추를 오늘은 유별나게 먹고 싶네」라는 시원스런 글씨가 원두막 풍경와 어우러져 정겹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수행중.
◆사진수행 관조스님
한 컷의 사진에 깨달음을 담는 관조 스님. 그의 사진은 「생, 멸 그리고 윤회」라는 한 사진전 제목처럼 깨달음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잡아낸다.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 생명력으로 가득한 영상이 특징이다.
스님은 20년 넘게 사찰, 스님, 불상, 자연 등을 담은 사진으로 명징한 「법문」을 해왔다. 전국 각지를 누비며 포착한 「중생」들은 흩뿌려지듯 핀 꽃, 서리맞은 낙엽, 얼음이 언 겨울나무, 흙탕물 속에서 핀 연꽃 등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들. 생명체의 순환과 윤회 원리를 쉽게 터득하게 해준다.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고, 곧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이를 가감없이 직시하는 내 자신을 관찰하면 그게 수행이지요』
「승가」 「열반」 「자연」 「대웅전」 등 사진집 8권을 펴낸 스님은 부산 범어사에서 살고 있다.
◆첼로수행 법현 스님
『첼로 소리는 가장 인간다운 소리이면서 신의 소리라고 합니다. 첼로음에 부처님의 말씀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게 수행이고, 보시행이지요』
「비구니와 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어울린다. 서울 연희동 대보사 법현 스님. 89년 출가 때 첼로를 내팽개쳤으나 「그게 아니다」는 깨달음을 얻어 1년 만에 다시 잡았다. 94년 예술의전당에서 고려교향악단과 협연한 이후 군법당 교도소 등 스님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첼로를 들고 달려간다.
『첼로음은 인간의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나오는 음입니다. 오선지의 악보가 첼로를 통해 소리로 바뀌는 과정은 향이 타 연기로 바뀌며 불법을 전하는 것과 흡사하지요. 수행의 출발점인 하심(河心·물흐르듯 하는 마음)과 인욕행(忍辱行·욕됨을 참는 수행)을 연주를 통해 얻고 싶습니다』
◆동자승 그림수행 원성스님
발그레한 볼에 해맑게 웃는 동자승(童子僧). 20대인 원성(중앙승가대 4년)스님은 동자승만 그린다. 그의 그림에는 고행하는 수도승, 성불한 부처님은 없다.대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인간적인 아기 스님들이 화폭을 메운다.
『나 자신의 허물과 욕구를 그대로 내보인 게 동자승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지요. 스스로를 내보임으로써 자신을 꾸짖고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화선지 위의 물 번짐과 흐름, 붓질을 바라보면서 나를 느끼게 되고 섬세한 한 선 한 선을 그리다보면 선(禪) 못지않은 삼매(三昧)에 빠집니다』
마음의 고요 없이 동자승은 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서울 상계동 학림사에서 수행중.
/서사봉기자 ses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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