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국내 독서시장을 점령해가고 있다. 최근 대형서점이나 전국서점조합연합회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몇몇 일본 작가의 번역물은 외국소설 부문은 물론 소설 전체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일부 대형서점에서는 아예 「일본소설 베스트 10」 등 특별코너까지 마련해 독자의 눈길을 붙들고 있다.5월 5~11일 교보문고의 외국소설 판매집계를 보자. 순위에 오른 10편의 소설 중 일본 소설이 8편이나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선두로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 이어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골드 러시」가 3위를 차지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무라카미 류의 첫 장편소설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도 여전히 인기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이런 바람을 타고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까지 갑자기 베스트 순위에 들었다』고 말했다. 「설국」은 스테디셀러이긴 했지만 베스트 순위에 오른 것은 4월 중순 이후부터다. 일본왕가의 백제기원설을 소설화한 우다 노부오의 근간 「백제화원」, 하나무라 만게츠의 「게르마늄의 밤」도 순위에 들었다.
전체 10편의 외국소설 중 일본소설이 아닌 것은 프랑스작가 카트린 클레망의 「테오의 여행1」과 독일작가 퀸트 북홀츠의 「순간을 채색하는 내 영혼의 팔레트」 두 작품이다. 둘 다 청소년용이다. 과거 외국소설 하면 프랑스나 미국작품의 번역물 일색이던 것에 비하면 일본소설의 강세는 놀라울 정도.
이같은 현상은 우선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독서시장의 주도층인 청소년들의 일본문학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커졌다는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있다. 대중문화의 스타시스템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일본의 이른바 스타작가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다. 90년대 초부터 불어닥친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 이후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 대중문화의 스타 못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내의 대형 출판사들도 독서시장 침체에 따른 국내물의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각각 특정 일본작가의 저작권을 독점계약, 의도적 띄우기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소설이 영미권이나 프랑스·독일어권 또는 최근 활발히 소개되고 있는 남미권 작가들보다 잘 팔리는 이유는 그들의 정서나 문장이 한국독자들에게 비교적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거 전집 형태로 소개됐던 대중물들과는 달리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유미리, 히라노 게이치로, 하나무라 만게츠 등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은 나름대로 작품성도 갖추고 있기는 하다. 또 요리, 재즈 등 특정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감수성을 보여준 무라카미 류의 작품도 국내작가들이 미처 개발하지 못했던 세계의 소설화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가 과다한 폭력과 엽기성, 약물중독, 물질만능 등 일본소설 특유의 세계에 대한 국내 젊은 독자층의 경도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도 크다. 수도원에서의 변태적 성행위와 폭력을 그린 「게르마늄의 밤」의 작가 하나무라 만게츠는 『나는 소설을 통해 나의 독자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는 문학의 일면일 뿐이다. 그것이 인기의 이유라면 위험하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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