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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그후19년] 적.동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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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그후19년] 적.동지가 없다

입력
1999.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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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최대 피해자는 이 땅의 민주주의였지만 그 희생을 몸으로 치러냈던 사람들은 광주시민들과 이른바 「김대중(金大中) 내란음모 사건」 연루자들이다.19년전 내란획책의 수괴로 몰렸던 김대중대통령(당시 국민연합공동의장)은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룩,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됐다. 또 다른 사건연루자들도 대부분 현 집권세력에 포진해 있다. 신군부에 의해 조작된 「내란음모」세력들이 역사의 중심을 통과, 이제는 정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비서를 지내다 옥고를 치른 한화갑(韓和甲)·김옥두(金玉斗)씨는 재선의원으로 집권당에서 요직을 맡고 있고 김홍일(金弘一·김대통령 장남) 설훈(薛勳·당시 고대생)씨도 금배지를 달았다. 김대통령의 옥중 독살을 경계, 『은수저를 제공하라』며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던 이문영(李文永)당시 고려대교수는 현재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다. 한승헌(韓勝憲)당시 국민연합중앙위원은 감사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문익환(文益煥)목사는 유명을 달리했다.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가해자들은 재판을 거쳐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풀려나 이제는 역사적 「화해」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각각 무기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던 전전대통령과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97년 대선 직후 석방됐다. 이른바 「보안사 4인방」 가운데 허화평(許和平)·허삼수(許三守)·이학봉(李鶴捧)씨도 98년 8·15특사등을 계기로 사면·복권돼 허화평씨는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동지와 적의 경계를 넘나든 사례도 있다. 「내란음모」세력이었던 이신범(李信範·당시 서울대제적생) 심재철(沈在哲·〃서울대총학생회장)씨는 각각 한나라당 의원, 부대변인으로 김대통령과는 길을 달리했다. 반대로 보안사 4인방중 한 사람인 권정달(權正達·당시 정보처장)씨는 국민회의 부총재로,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박준병(朴俊炳·〃20사단장)씨는 자민련 부총재로 나름대로 정치권에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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