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5·16」, 「5·17」과 「5·18」.이런 날들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정치인들의 역사평가는 종종 우리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과의 화해를 선언하자 김종필(金鍾泌)총리가 「만시지탄이나 사필귀정」이라며 화답했다. 한 사람은 「박정희」의 최대 피해자이고, 또 한사람은 유업계승자란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5·16으로 일어섰다 80년 5·17때 신군부에 의해 쫓겨났던 김총리가 17일 라디오방송에 나와 5·16의 의미를 되새기고 18일에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주재하게 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간의 역사적 화해라는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이 와중에 「3김」중 한사람이 역사평가에 가세했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이날 갑자기 4·19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현정권의 이같은 역사재평가를 규탄하는 「시국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YS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무슨 염치로, 무슨 자격으로 나서느냐』란 비난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이쯤되니까 우리 정치는 개그수준으로 전락하고, 우리 현대사는 뒤죽박죽이 돼버린 느낌이다. 해방이래 우리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고 평가된 적이 과연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승만(李承晩)정권때 친일파들이 득세하면서부터 역사는 뒤틀리기 시작했다. 역대 정권들은 하나같이 진정한 자기반성은 없이,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득실에 따라 함부로 역사를 재단하고 의미를 부여해왔다. 과거와의 화해나 역사의 평가는 진정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공과를 냉철하게 따진 뒤에 이뤄져야 한다.
/정치부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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