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타계한 진 사라젠은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이룩한 최초의 골퍼다.US오픈 2회, US PGA 3회, 마스터스 1회 우승으로 미국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한 사라젠의 마지막 꿈은 브리티시 오픈 우승이었다. 1928년 두 차례나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한 월터 하겐과 함께 영국행 여객선에 오른 사라젠은 자신의 열망을 털어놓았다. 하겐은 사라젠의 열망에 감동, 그의 캐디를 빌려주기로 약속했다.
하겐을 두번씩이나 브리티시 오픈을 제패하게 한 캐디는 바로 스키프 다니엘즈였다. 다니엘즈를 만난 사라젠은 첫 눈에 반했다. 나이는 61세였지만 1차 세계대전의 노병으로 골프장 곳곳을 자기 집 마당처럼 훤히 알고 있었다.
대회 이튿날. 14번 홀에서 사라젠의 드라이버샷은 오른쪽 러프로 날아갔다. 파5의 이 홀은 그린 앞 70야드에 샛강이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까다로운 코스였다. 안전위주 플레이로는 선두에 나설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우드로 샛강을 넘길 작정을 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고개를 흔들며 5번 아이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 오늘은 절대 안됩니다. 내일이라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고집 센 사라젠은 3번 우드를 꺼내 휘둘렀다. 볼은 20야드밖에 나가지 않았다. 자제력을 잃은 사라젠은 제3타를 쳤으나 간신히 러프를 탈출하는데 그쳤다. 결과는 더블 보기. 3·4라운드에서 다니엘즈의 충고를 받아들여 선두인 월터 하겐을 1타차까지 추격했으나 결국 2타차로 월터 하겐에게 우승컵을 넘겨주어야 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사라젠은 다니엘즈를 만나 무모한 욕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사과했다. 그러자 다니엘즈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라젠, 다시 한번 해봅시다. 내가 죽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에게 브리티시 오픈의 우승컵을 반드시 안겨주겠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사라젠은 4년후인 1932년 다니엘즈의 도움으로 13언더파의 신기록을 세우며 대망의 브리티시 오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 때도 사라젠은 자칫 다니엘즈를 외면했다가 우승컵을 놓칠 뻔했다. 사라젠은 다니엘즈가 나이 65세에 골프 백을 짊어지기 힘들만큼 건강도 나쁜 것을 알고 젊은 캐디를 고용했는데 이 캐디가 엉터리였다. 대회 3일을 남겨두고 사라젠은 부랴부랴 다니엘즈를 다시 불러 우승할 수 있었다.
근거없는 욕심과 모험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사라젠을 떠올려보자.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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