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대구를 방문한 김대중대통령은 고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건립등 추모사업에 정부가 적극 협력할 뜻을 밝혔다.박정희 개발독재 체제하에서 가장 큰 피해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김대통령이 박정희대통령과 화해하겠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우울했던 한시대를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볼때 김대통령의 화해손짓은 분명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새삼 「최후의 승리는 용서와 관용」이라는 격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불행했던 한 시대를 피해자가 관용으로 감싸려 한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인 산자와 가해자인 죽은자와의 역사적인 화해에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헌정사가 굴곡이 컸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때 구미의 박정희생가를 찾아 당선되면 기념사업을 지원할 의사가 있음을 공약한바 있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이번 기념사업 지원의사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나, 좀더 신중해야 할 면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 시대나 한 인물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엄격해야 하고, 동시에 객관적이어야 한다. 더구나 한시대를 통치했던 정치지도자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부분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김대통령이 지적한대로 박 전대통령은 6·25이후 실의에 빠진 나라에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와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과오도 많다.
무엇보다도 그는 유신 강압통치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았다. 정보부에서 고문을 받다가 목숨을 잃은 서울법대 최종길교수나 소위 인혁당 사건으로 처형된 도예종씨 등은 한 예에 불과하다.
이들의 유가족들은 지금도 남편이나 자식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정확한 사인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김대통령의 화해 제의가 두 사람간의 개인적 화해일뿐 결코 자신들과의 화해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김대통령의 화해조치가 국민회의 불모지인 TK지역과의 정치적 공조를 모색하기 위해 정략적 차원에서 고려됐다고 오해하고 있다.
오늘날의 망국적 지역감정, 즉 영호남 갈등과 부정부패는 바로 박 전대통령때 잉태된 산물이다. 따라서 진정한 역사적 화해는 기념관 건립에 앞서 이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정부차원의 명확한 진상규명이 선행된 후에 고려해야 마땅하다.
아직은 국민세금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할 단계가 아니다. 우리는 정략적 박정희 부활에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