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한청희(韓淸姬·당시52·여·서울 청계초등학교 근무)교사의 제자들은 스승의 날을 맞아 착잡한 마음만 앞선다. 2년여에 걸쳐 추진해온 「한청희교사 추모장학회」 설립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20여년을 교직에 봉직해온 한교사는 누구보다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유난한 제자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오면서 제자들을 마치 친자식인양 돌봐줬기 때문이다. 한교사 생전에도 이미 300여명의 제자들이 「우리들」이란 동문회(회장 고정문·高廷文)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대부분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한교사 앞에선 언제나 초등학교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갔다.
제자들은 매년 스승의 날 아름아름 돈을 모아 한교사에게 선물을 마련해 왔었다. 그러나 97년 스승의 날 선물이었던 「괌여행」이 영원한 이별선물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러자 제자들 사이에선 자연스레 추모사업 얘기가 나왔고 이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모은 기금과 한교사의 연금 1억2,500만원을 합쳐 추모장학회를 설립키로 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측은 『원칙상 직계가족만 연금수령이 가능하다. 장학회가 정식법인으로 등록되면 연금의 반을 내주겠다』라고 말하는등 행정당국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장학회 허가주체인 시교육청도 3억원의 기금이 마련돼야 법인허가가 가능하다는 입장. 제자들은 바쁜 생업에도 불구하고 3,000여만원의 돈을 마련했지만 더이상은 어려운 형편. 결국 장학회설립은 행정상의 이유로 진퇴양난에 빠졌고 독신인 한교사의 연금은 고스란히 국고로 귀속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내팔자에 자식복은 많아 비행기도 타보는구나」라며 흐뭇해하던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는 제자들은 『내년 스승의 날에는 꼭 장학회를 설립해 선생님 영전에 드릴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주훈기자 ju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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