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비판의 정신을 가진 거장들의 재회. 올해 칸영화제를 놓고 세계에서 모인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칸이 각국의 얼굴이랄 수 있는 감독, 그중에서도 특히 할리우드에 저항하는 제3세계의 감독들을 선호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올해에도 피터 그리너웨이, 팀 로빈스, 데이비드 린치, 레오 카락스, 짐 자무시, 아시아의 첸 카이거와 키타노 다케시를 선택했다. 그러나 뭔가 좀 다르다. 칸영화제도 한동안 할리우드 상업논리에 밀려 외면했던, 이름은 높으나 주변부를 떠돌던 거장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우선 개막작「시베리아의 이발사」의 러시아 감독 니키타 미할로프와 「몰로흐」의 알렉산드르 소코로프 감독 늘 우리가 비디오로만 봐야했던 미국의 존 세일즈가 그렇다.「라 발리아」로 참가한 이탈리아의 마르코 벨로치오와 「누구도 대령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의 아투로 립스타인.
멕시코 거장이지만 그의 대표작 「딥 크림슨」(96년)은 이제야 국내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카도시」로 이스라엘 감독으론 25년만에 칸에 참가하는 기록을 세운 아모스 기타이도 있다.
이들은 60년대 말에서 70년대 말까지 소위 「세계영화의 황금기」때 영화를 했던 사람들이다. 「제3의 영화」를 하자고 87년 영국 에딘버러에 모였던 사람들이다. 자기 나라의 영화정신을 대표하는 감독들이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선호한다.
민족의 문제를 그리면서도 국수주의가 아니다. 자국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세계 자본주의나 독재 속에서 파악하려는 감독들이다. 우리에게 그들은 낯설다.
벨로치오 감독은 「육체의 악마」로 겨우 몇사람만 이름을 기억하고, 「어머니와 아들」만 소개된 소코로프 역시 마찬가지. 칠레출신의 라울 루이즈는 소개된 적이 없다. 기타이도 영화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다큐멘터리의 거목이었다.
그들은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인생유전(카도시), 히틀러의 살인광기에 맞서는 애인 에바(몰로흐), 여성의 노동문제(라 발리아).
그들은 보편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기존질서 속에 파악하고 있다. 영상원 김소영교수는 그 이유를 『단일화한 세계자본주의에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칸영화제 역시 할리우드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질 야콥 집행위원장은 『할리우드 젊은 감독들에게 새로움이란 없다』고까지 단언했다.
따라서 황금종려상 역시 아시아영화인 첸 카이거의 「황제와 암살자」나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보다는 그들중 하나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칸영화제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칸(프랑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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