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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마음] 아이들 푸른자연서 무럭무럭 자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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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마음] 아이들 푸른자연서 무럭무럭 자랐으면

입력
1999.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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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온몸이 불덩이 같다. 감기 나았다고 병원 안 다니기 시작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아이는 또 다시 열이 오른 것이다. 해열제를 꺼내 한 숟갈 먹이고 다시 재웠다. 하도 자주 있는 일이어서 이젠 놀랄 일도 아니다. 그저 왜 이렇게 맨날 아플까 속만 까맣게 탈 뿐이다.다섯살인 우리 아이는 영국에서 태어나 세살까지 살다가 귀국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이의 건강에 관한 한 난 정말 자신 정도가 아니라 오만하기까지 한 엄마였다. 친척아이들이 감기를 달고 사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내가 엄마노릇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귀국한 지 2년만에 우리 아이는 감기가 유행한다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코를 훌쩍대고, 이게 나으면 또 다른 감기가 걸리는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가 됐다. 중이염, 비염, 결막염, 후두염 안 앓아 본 게 없는 감기의 만물상이다.

우리 모자가 나타나면 의사가 오히려 미안해 할 정도이다. 너무 속이 상해 한 번은 의사에게 이유를 물어 봤다. 그랬더니 원래 체질도 약하지만 먼지 같은 공해 때문이니 청소도 자주 하고 맑은 공기도 자주 마시게 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영국 살 때는 좋은 동네는 아니었지만 커다란 나무도 많았고 공원에도 자주 가서 산책을 했던 생각이 났다. 영국에는 매연이 가득한 대도시에도 허파역할을 하는 공원들이 곳곳에 있어서 도시사람들의 숨통을 터주곤 했다.

푸른 자연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던 아이를 회색빛 고층아파트에서 살게 했으니 마치 산에서 잘 자라던 나무를 화분에 옮겨 집안으로 들여다 놓은 것과 똑같았던 것이다. 요즘 한국에선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인기가 높아 아파트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지고 웬만한 시골들판에도 아파트가 괴물처럼 서 있다.

그러나 영국은 오히려 고층일수록 빈민들이 살고 그나마도 빈 집이 많다. 영국사람들이 꿈꾸는 자기 집은 예외 없이 정원이 딸린 아담한 단독주택이다.

나는 대단한 환경론자도 아니고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선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밟을 수 있는 땅이 기껏해야 학교운동장과 아파트화단의 흙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시골에까지 아파트를 짓거나 땅 한뼘 안 남기고 시멘트로 전부 발라 버리진 못 할 것이다.

오늘도 집안으로 들어 온 나무는 온 힘을 다해 바깥으로 몸을 뻗치고 있다.

정미선·방송작가·충남 천안시 신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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