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목포고 학맥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30년동안 권부에서 소외됐던 고향의 인재들을 김대중대통령이 크게 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중 일부는 과거같으면 불가능했던 정·관계의 핵심요직에 기용됐다.목포고는 중고 병학제였던 1942년 목포중으로 출발, 50년 고교로 바뀐 전통있는 학교. 목포는 물론 신안군 해남군 무안군 등 전남 서남지역에서 공부 잘 한다는 남학생은 모두 여기로 몰려들었다. 새 정부출범 이후 이 학교가 김대통령의 모교인 목포상고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TK와 PK정권은 당시 야당 리더였던 김대통령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목포고 출신들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전까지 여당 국회의원은 5명, 차관급 이상도 3명에 불과했고 청와대 요직은 엄두도 못냈었다. 이 시기에 정·관계로 나간 대표적 인물이 고(故) 최영철(崔永喆)전부총리 정시채(丁時采)전농수산부장관 전석홍(全錫洪·한나라당)의원 등 3회졸업생 3인방. 최 전부총리는 한국일보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정계에 진출, 국회부의장까지 지냈고 정 전장관과 전 의원은 행시 합격뒤 내무관료를 거쳐 의원이 됐다. 이밖에 송용식(宋鏞植·구 목포중 5회)전 한국프레스센터 이사장, 박승재(朴承載·2회)한양대 명예교수, 김정균(金正均·8회)전 생산기술연구원 감사가 여당의 전국구 의원을, 김거인(金居仁·7회)씨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배종무(裵鍾茂·구 목포중 3회) 김인곤(金仁坤·〃 5회) 한화갑(韓和甲·8회) 천정배(千正培·21회) 유선호(柳宣浩·〃) 등 목포고 출신 야당의원 5명은 동시에 여당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특히 한의원은 동교동 가신그룹으로 김대통령의 최측근이며 인권변호사 출신인 천, 유의원은 당내 개혁세력의 견인차다.
관계의 경우 7회 동기인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과 최규학(崔圭鶴)국가보훈처장이 나란히 발탁됐다. 특히 김장관은 향우회와 동창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김대통령과 목포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차관에는 못미치지만 윤은중(尹銀重·9회)감사원 사무1차장, 박종옥(朴鍾玉·12회)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장, 김상남(金相男·13기)노동부 기획관리실장, 정영식(丁榮植·14회)소청심사위원등 요직에 진출한 동문도 많다.
청와대에도 김유배(金有培·10회)복지노동수석, 박준영(朴晙塋·13회)공보비서관, 김성진(金成珍·21회)보도지원비서관이 입성했다. 김수석은 성균관대 교수 출신으로 노동경제학회장을 역임한 노동분야의 권위자여서 재야노동계에서도 기대가 크다.
그러나 정작 목포고 출신들은 역차별 때문에 아직도 실력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봉인(崔峰寅·5회)재경목포중·고동창회장은 『목포고 동문을 우대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처럼 출신지역 때문에 인사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이상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목포고나 목포 출신 가운데 능력있는 사람이 역차별 받아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박승재 명예교수도 『신정부 출범이후 호남사람들에게는 심리적 위안이 주어졌지만 실질적 보상은 없었다』며 『수십년의 차별을 극복하는데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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