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지음·양억관 옮김·작가정신 발행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요리가 중요한 화제다. 「북경반점」이나 「신장개업」 같은 영화들이 나오고 「미스터 초밥왕」 이나 「맛의 달인」 같은 만화들이 인기를 끈다. 주는 거나 먹던 시절에서 줘도 안 먹는 시절로 바뀐 것이다. 맛 없는 걸 먹을 바엔 그냥 굶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리는 도시에 사는 인간이 자연을 직접 주무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여가활동이다. 저 서해안의 염전에서 채취된 소금만 해도 그 속엔 바람과 햇볕, 그리고 수차를 돌려 물을 퍼낸 인간의 땀이 서려있을 것이다. 당근은, 등심은, 그리고 생선은 또 어떤가. 우리의 식탁에 올려진 음식물을 통해 자연은 우리의 도시적 일상으로 자기 몸을 들이미는 것이다. 내게 있어 생선은 곧 바다요, 양파는 곧 땅이다. 불행히도 내게 허용된 자연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요리는 그런 자연을 가공하는 행위다.
무라카미 류의 이 소설집은 바로 그 요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묶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그 요리를 함께 먹었던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그것이 스포츠 소설이든 추리 소설이든, 인간의 이야기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연만을 묘사한 영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소설은 없다. 역시 그런 면에선 이 책 역시 인간에 대한 보고서라는 소설의 기본적 임무에 충실하다.
오늘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사람 얼굴도, 이름도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향기와 맛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가도 맛은 남는다니, 참 쓸쓸한 노릇이다.
김영하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