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심보감」에서옛 글에서 나온, 사람을 움직이는 구절,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놓거나 뿌리째 흔들어버리는 구절을 나는 많이 외고 다닌다. 어린 시절에는 한문의 좋은 구절을 많이 외고 다녔다. 그로부터 나이와 근기에 어울리는 무수한 동서양의 잠언들이 나에게 전율을 안기면서 삶을 가로질러갔다. 그러나 그 많은 구절들은 아름답게 여겼던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이 지금은 내 곁에 있지 않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아내의 잔소리처럼 내 삶을 간섭하는 구절이 있다. 소박하다 못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다음 몇 구절을 나는 「명심보감」에서 건졌다. 내 나이 대여섯 살 때 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 복이 바로 굴러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화는 스스로 멀어져 갈 것이오, 그르다고 여기면서도 그 일을 하면 화가 바로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은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은 봄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나날이 자라는 바가 있음이오, 그르다고 여기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숫돌과 같아서 그 닳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나날이 닳는 바가 있음이다』
이렇게 순진한 견해를 설마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람들은 나에게 물을 것이다. 믿고 말고, 나는 「하늘」을 믿는 대신 이 순진한 견해를 믿는다. 봄풀처럼 자라고 싶어서 믿는 것도, 숫돌처럼 닳는 것이 무서워서 믿는 것도 아니다. 나는 원문의 「선」과 「악」을 「옳다고 여겨지는 일」, 「그르다고 여기는 일」로 해석한다. 「옳음」과 「그름」을 규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의 주체가 「옳다」고 여기는 것,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얼굴과 표정은 바로 그 믿음이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자라는 봄풀 같은 표정이 되었든 다 닳은 숫돌 같은 표정이 되었든 나는 이렇게 빚어진 내 얼굴과 표정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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