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남자 바로보기(푸른나무 출간)」라는 남성학책을 번역했던 하유설(河有雪·54·미국인)신부가 최근에는 국내 첫 남성학 강사인 정채기(건국대)씨 등과 함께 국내 남성학이론 및 남성운동을 정리하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나원형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정송(鄭松)아버지의 전화대표 등도 공동참여해 7월 출간예정이다. 하 신부는 또 서울 여성의전화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들의 모임」회원으로 2년째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남성운동가이기도 하다.『한국과 달리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은 미국남성들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데 흥미를 느껴』 남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하 신부는 그 후 3년만에 엄격하기만 했던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좋아지는 경험을 했다. 「남자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는 남성학의 가르침이 도움이 된 것. 하신부는 『남성학을 몰랐으면 아버지와 그렇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며 『아버지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하 신부가 처음부터 남성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시빈민, 노동자를 위한 사목을 주로 했다. 지금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소망의 집」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하 신부는 69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처음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었다. 철학석사(인디애나주 노트르담대)인 하 신부는 6년간 경북대에서 영어강사를 하면서 한국의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고 선교사의 꿈을 굳혔다. 이때 만난 한국어선생님은 러셀 펠트마이어라는 미국 이름에 맞춰 「유설」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75년 미국외방선교회(메리놀선교회)신학교에 입학한 하 신부는 80년 한국에 파견됐다. 경기 성남시에서 도시빈민 선교를 하다 89년 신학생 교육 강사로 미국에 돌아간 것이 남성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됐다. 시카고의 한 신학대학에서 남성학자 로버트 무어의 강의를 듣고 남성학에 빠지게 됐던 것. 그후 틈틈이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지식을 넓혀왔다.
95년 다시 한국에 온 하 신부는 신문에 난 「평등문화…」기사를 보고 직접 찾아가 회원이 됐다. 회원은 10여명으로 매달 토론회를 갖는다. 최근에는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회원이 돼 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도 여러 번 참가했다. 『남성학 공부를 하다보니 피해받는 여성의 아픔에 대해 관심이 간다』고 한다.
하 신부는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성숙한 남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80년대 남성학의 목표였다면 90년대에는 남녀가 서로 파트너십을 가져야 하며 사회및 자연과도 평등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향란기자 ranh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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