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7일 코소보 특사를 임명함으로써 코소보 사태와 관련한 유엔의 역할에 힘이 실리게 됐다. 유엔 코소보 특사는 관련 당사국들과 대화채널을 유지하며 정치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창구로 발칸 사태를 최종 단계에서 거중조정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엔 안보리의 승인없이 공습을 전격 개시하면서 세계 평화와 안전보장이라는 대의에 손상을 입은 유엔으로서는 명예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그러나 나토 공습 40여일만에 나온 유엔의 처방은 때늦은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발칸 전역에는 고향을 등진 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알바니아계 난민들이 이미 100만여명에 이르고 이같은 참상은 앞으로도 얼마나 지속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난 총장은 공습 초기부터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코소보 난민의 안전귀가와 평화유지를 보장할 국제 보안군 배치 등 5개항 평화안을 제시하는 외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보안군의 구성은 둘째 치고 코소보 특사 임명에만도 한달을 소요했다. 아난 총장은 이에대해 『관련 당사국들의 핵심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인 만큼 절대적 지지가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특사 후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방해공작이 걸림돌이었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다. 후보에 오른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를 나토의 공습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는 이유로 영국과 미국이 끝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난항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유엔은 또 6일 서방선진 7개국과 러시아의 G8이 어렵게 도출한 평화안의 최초 수혜자임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국제 민간 및 보안군(KFOR)의 구성과 관련한 난제들이 미결상태지만 공습 참가국들의 합의라는 성과물이 고스란히 유엔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를두고 유엔이 나토와 코소보평화안 경쟁을 벌여 최종적으로 패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작부터 나토에 철저히 따돌림을 당한 유엔. 이제서야 코소보 평화정착의 공을 넘겨 받았지만 강대국이 벌이는 권력정치의 게임에 의해 유엔은 언제라도 다시 무력화할 수 있다. 유엔의 고유영역을 이번에는 찾을 수 있을까.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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