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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여성 버스기사 지근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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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여성 버스기사 지근옥씨

입력
1999.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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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새벽 서울 광화문에서 일산신도시를 운행하는 신성교통 907번 심야좌석버스안. 취객들로 만원을 이룬 이 버스의 운전사는 뜻밖에도 여성이다. 하늘색 와이셔츠에 남색넥타이 차림의 늘 싹싹하고 친절한 지근옥(44)씨.이웃집 아줌마같은 수수한 인상이지만 그는 핸들만 잡으면 신바람 나는 「슈퍼우먼」이다. 남자들도 기피하는 심야버스 운전을 하면서 단 한번도 결근한 적이 없다. 그래서 월급(140만~150만원)도 남자보다 20만~30만원을 더 받을 정도로 억척 운전사다.

심야버스 운전을 시작한 것은 1년 3개월전인 98년 1월. 재혼마저 실패해 스스로 노후대책을 준비해야 되겠기에 이 길을 택했다. 앞서 서울 H교통에서 1년여동안 주간에 시내버스를 운전했지만 쓰라린 상처를 훌훌 털고 일에 전념하기 위해 아예 일산신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사실 여자가 덩치 큰 버스를 운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남자운전사들의 편견도 있고 버스회사간 경쟁도 심하고 사고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다. 게다가 심야버스는 취객이 손님의 절반을 차지하고 종류도 여럿이다. 간혹 취객이 그를 희롱할 경우 『운전석 천정에 설치된 카메라에 녹화되고 있으니 후회할 일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이내 물러선다.

IMF 체제후 취객수가 이전보다 30%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주고객은 취객이다.『IMF가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초기에는 술을 마신 승객들끼리 시비가 일기도 했으나 몇 달 지나면서 거의 없어졌어요. 특히 버스안에서 흔히 눈에 띄던 일간지나 빈 음료수캔 등도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아요』

그는 2시간30분이상이 소요되는 곡선노선을 운행하는 동안 단골 손님들의 인생상담도 해준다. 화정지구에서 남대문까지 가는 40대 여성은 시아버지 술주정때문에 속상해 죽겠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은평구 창릉동에서 탄 50대 아저씨는 요즘 마누라 바가지가 심해졌다고 투덜댄다.

그의 목표는 난폭운전이 판치는 가운데 사고 없이 하루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 그래서 그의 손은 남자손처럼 거칠기만 하다.

그의 인생 또한 꾸불꾸불한 907번 심야좌석버스 노선처럼 굴곡이 많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그는 25살때 집안소개로 한살위의 건설회사 직원과 결혼했으나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헤어지고 무허가 분식집을 운영하며 남매를 키워왔다. 중졸 학력인 그는 틈틈이 『뭔가 승산있는 일을 준비하자』고 다짐한 후 5년전 버스 운전에 필요한 1종 대형면허를 재도전끝에 따냈다. 열심히 저축해 재혼하고 시댁으로 보낸 자녀들과 빠른 시일내에 다시 결합하는 것이 꿈이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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