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에는 정치가 없다. 정치는 실종됐다. 여야관계도 없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정논의는 사라진지 오래다. 여당은 밀어붙이기식으로, 야당은 강경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이 한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차원높은 정치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앞장서고,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면 되는 것이다. 정치의 덕목은 제반 분야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있다. 그런데 거꾸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민주주의의 기본인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은 이 시점에선 사치에 불과하다. 여당은 다수의 힘을 무기로 벌써 네차례 법안을 날치기 처리했고, 그 여파로 야당은 또다시 강경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회창총재가 선택한 장외·강경투쟁은 이런 여야관계의 관점에서 바라 봐야 할 것이다. 그의 선택이 이 시점에서 과연 옳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의 이같은 선택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당은 이 대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상대방을 참담한 지경의 코너로 몰아놓고 협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총재는 사실 지금 사면초가의 입장에 놓여 있다. 야당도 그들 나름의 지지세력과 정치적 기반이 있게 마련이다. 야당은 지금 정권의 견제세력으로서의 책무 뿐만이 아니라 그 기반이 위험수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당은 그들의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의 야당을 바라 보아야 한다. 그들이 과거에 했던 것은 민주화 투쟁이고, 오늘의 야당은 과거 민주화 투쟁의 반대세력이었으므로 그들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지가 않다는 식의 사고는 삼가야 한다. 야당에도 최소한의 정치적 입지를 열어주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국민은 여야가 이성을 되찾아 정치력을 복원해 주기를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 여당은 이총재의 선택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왜 그같은 선택이 나왔는 지를 따져본 뒤, 자신들에겐 잘못이 없었는지 자성해야 한다. 무턱대고 『민주화 시대에 웬 민주화 투쟁이냐』고 비아냥대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아냥대는 것은 불에 기름 붓기와 다름없다.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미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의 책무를 잃어버린 사람이며,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삼으려는 생각을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