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며느리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야, 야』라고 부른다. 아들들을 『닭대가리만도 못한 놈들』이라며 닭장에 가두기까지 한다. 남편에게 할 말도 못하고 잔뜩 주눅 들어 사는 아내, 자식으로부터 무시당하는 주부. 양푼에 밥을 비벼먹다 남편에게 들키자 푼수를 떠는 아내. 우리 드라마는 바로 이처럼 비뚤어진 남성과 여성상이 맞물리는 지점에 서 있다.요즘 드라마가 남편과 아내상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 절대 권력을 잃어버린 부권의 한 변형된 모습인지, 남편과 자식으로으로부터 소외돼 자아를 잃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인지….
먼저 왜곡된 남성상. MBC 주말드라마 「장미와 콩나물」(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의 아버지 최경손(김성겸)이 대표주자. 제대한 아들 규대(차승원)가 자신의 농원에서 일한다고 하자 곡괭이로 엉덩이를 34대나 팬다. 다른 아들들이 말리자 『니 놈들도 마찬가지야. 닭대가리만도 못한 놈들』이라며 닭장에 가두기까지. 아내 필녀(김혜자)에게는 며느리 앞에서 『야, 야』라고 부르고, 『네, 하는 법이 없다. 이러니 내가 큰소리를 지를 수밖에』라고 위세를 떤다.
KBS 2TV 일일드라마 「사람의 집」(극본 박진숙, 연출 김현준)의 말희 아버지(이순재)도 마찬가지. 말희(채시라)가 머리를 염색하자 가위를 들고나와 머리를 깎아버리겠다고 위협한다. 아내(남능미)에게는 『어디서 또박또박 말대꾸야』라는 막말로 대한다. SBS 일일드라마 「약속」(극본 허숙, 연출 이영희)에서 일규 아버지(김용건)는 아들이 결혼문제로 사경을 헤매는데도 『이 아비 얼굴에 먹칠을 하느냐』며 자신의 입장만 내세운다.
온전하지 못한 여성상은 최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매스컴모니터회(회장 신신자)가 잘 지적했다. 「사람의 집」과 「약속」을 비롯, MBC 「하나뿐인 당신」(극본 박정란, 연출 정운현) 등 방송 3사 일일드라마의 여성상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사람의 집」의 말희 어머니(남능미)는 항상 남편 눈치를 보고 남편의 지나친 하대에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하나뿐인 당신」의 재민 어머니(김윤경)도 서민적인 억척주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가족의 상처에 마음 아파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약속」의 진주 어머니(임예진)는 적당히 헤픈 표정과 생각없는 듯한 느린 말투가 특징인 푼수 주부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모니터회는 『국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일드라마의 속성상 남성·여성상을 왜곡시키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방송 3사가 공영성을 실천하기 보다는 시청률에만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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