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의 하방(下放)으로 여의도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방탄국회 등으로 인해 여의도 주변에 묶여 있던 의원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지역구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203회 임시국회가 파행으로 끝나는 바람에 여야관계는 가파른 대치국면에 들어갔지만, 의원 개개인의 입장에선 근 10개월만에 본격적인 지역구 활동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더군다나 선거구제 개편과 의원정수 감축 등으로 정치개혁의 향방이 잡히면서 의원들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콩밭에 가 있는」 상태였다.
출마를 노리는 정치 신인들과 고토회복을 노리는 낙선 중진인사들이 지역구를 누비는 동안 서울을 벗어날 짬을 내지 못한 현역의원들은 입이 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나마 당직을 갖지 않은 의원들은 국회 회기중이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 지역구를 다녀오거나 주말을 아예 지역에서 보내기도 했지만, 중앙당 당직자들은 당무때문에라도 몸을 뺄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중간당직자는 『매일 TV에 얼굴 나오고 신문지면에 이름 오르내리는 고위 당직자들은 그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할 수 있지만, 중하위 당직자들은 당직 맡은 죄 때문에 지역구 활동에 지장이 적지 않았다』면서 『출마를 노리는 경쟁자들은 오래전부터 오라는 곳 다 가고 돈까지 쓰고 다니며 표밭갈이를 하고 있어 늘 좌불안석』이라고 말했다.
선거구제 변경이 예상되는 도농복합지역 등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의 불안감을 더욱 크다. 도농복합 지역의 경우 선거구 인구 상한선이 현행 30만명에서 35만~40만명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2개 선거구가 하나로 합쳐질 개연성이 높다.
이 때문에 출마를 노리는 인사들이 벌써부터 인접 선거구까지 침범, 지구당 당원들끼리 서로 얼굴 붉히고 드잡이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중선거구제가 될 경우 몇개 선거구가 합쳐 한 선거구가 되거나 같은 구 내에 갑·을 등으로 쪼개져 있는 선거구가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이 큰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들 지역의 의원들 역시 서로 상대방 선거구를 넘겨다보느라 모들뜨기 신세가 돼 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당 지도부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선거 망치기 십상』이라며 『한번이라도 더 지역구 행사에 얼굴 내밀고 한사람이라도 더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인원만 서울에 남기고 보좌진까지 모조리 데리고 지역구에 진을 친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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