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안나푸르나Ⅰ봉에서 하산하다 사망한 여성산악인 지현옥(池賢玉·38)씨는 생전에 『침묵의 산이 나를 부른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국내 여성산악인 가운데 최초로 올랐던 에베레스트도, 무산소 등정의 신화로 기록됐던 가셔브럼Ⅱ봉도 지씨에게는 자신을 말없이 불러대던 「침묵의 산」이었다. 서양화가를 꿈꾸던 미술학도였던 지씨는 또다른 침묵의 산에서 꽃다운 침묵으로 20년간의 짧지 않은 산악인생을 마감했다.
서원대 미술교육과 재학중이던 79년 대학 산악부와 맺은 인연은 지씨를 20년간 끝없는 도전과 성취의 삶으로 이끌었다. 93년 5월10일 32세의 나이로 12명의 원정대를 이끌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올랐을 때 키 165㎝인 그녀를 모두 「작은 원더우먼」이라 불렀다. 국내 여성 가운데 처음이자 세계 16번째 쾌거였기에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지않았다.
특히 98년 히말라야 가셔브럼Ⅱ(8,035m)봉을 여성산악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무산소 단독등정한 것은 세계 산악인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만큼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치밀하고 완벽한 등반을 추구하는 지씨는 당시 상상을 초월한 훈련량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됐다.
등반을 하지않을 때면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기도 했던 지씨는 『결혼하면 산행이 힘들어진다』며 미혼으로 지내왔다. 『지씨는 언론의 관심이나 칭찬도 필요없이 순수하게 산을 향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해왔다』는 충북산악연맹 박연수(38)전무의 전언처럼 지씨는 말없이 산을 향해 떠난 셈이다.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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