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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캘빈과 홉스- 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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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캘빈과 홉스- 정은숙

입력
1999.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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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와트슨 지음· 이희진 옮김· 홍익미디어플러스 발행 -우리가 저녁에 취객들 속에 섞여 걷고 있는 사이에도, 예술의 죽음과 사랑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사이에도 만화는 그려진다. 만화는 선과 여백과 서사의 예술이 아니라 그 모두를 합친 것 그 이상이다.

내가 만화를 보는 사이 어렴풋이 시와 소설과 문학이라는 존재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쩐지 그것들의 존재는 가는 한숨소리를 내는 듯하다. 만화는 이미 우리 숨결 속으로 들어와있다. 그리고 거의 생래적으로 지각한다.

시인도 만화를 많이 본다는 사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만화를 보고 시를 떠올리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친숙해진 일본만화가 아니면서, 무엇보다도 볼만한 만화가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이 반갑다. 이 사실은 이 책 「캘빈과 홉스 1_침대 밑에 괴물이 있어!」의 책머리에 이미 만화가 박재동이 지적한 바 있다.

종교개혁자와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창작한 빌 와트슨의 이 만화에는 많은 유머와 또 많은 가벼운 비극이 담겨 있다.

이것은 전 시대에 위대한 시인들이 했던 작업이다. 나는 이 만화를 그들 시인의 작업 중 어디에 놓아두면 좋을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람?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몇번이고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애써 진정한다. 왜냐하면 이 만화들은 감정의 발산을 잘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이 점을 말하려고 여기까지 에둘러왔다. 이 만화는 절제된 감정을 세련된 서사들로 엮어놓았다. 컷과 컷 사이에 행간이 너무 깊지는 않지만 다소간의 간격이 있다.

그 간격들을 통해 연민에 가까운 느낌의 독후감을 얻는다. 삶 자체가 가진 숙명적인 슬픔이라든지, 혹은 어떤 사람이면 누구나 본원적으로 가진 어려움 같은 것들. 곧잘 이런 의미 부여는 시인들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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